이현주 기술위원(왼쪽)과 김완수 심판위원


[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해 6월 세종시에서 제1회 생활 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필자는 세종시 복싱협회 양희천 회장 초청으로 참관 현장에서 이현주 김완수 대한 복싱협회 심판위원을 만났다. 두 분과 마주한 순간 필자는 묘한 감흥(感興)에 빠져있었다. 왜냐면 그들이 44년 전인 1981년 1월 제7회 킹스컵 출전 타이틀을 놓고 태릉선수촌에서 자웅(雌雄)을 벌인 숙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혈기 왕성한 목포대학 신입생 이현주가 결승(페더급)에서 노련한 김완수(수경사)와 맞대결 독일 탱크처럼 압박 판정승을 거두고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라이트 플라이급에선 허영모 (순천금당고)가 박권순(한국체대)을 판정으로 잡고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이현주 기술위원장(우측) 과 정희조 심판위원


1961년 7월 전남 고흥태생의 이현주는 전남 체중 재학시절 동료 심판위원 정희조처럼 촉망받는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그러나 1978년 전남체고 입학하면서 복서로 변신 1979년 12월 모스크바 올림픽 2차 선발전(페더급) 결승에서 백전노장 전학수(수경사)를 꺾고 우승 고교생 돌풍을 일으켰다. 그 경기를 전환점으로 이현주는 이후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뉴욕 월드컵(81) 뮌헨 세계 선수권(82) 포함 4년간 12차례 국제대회에 출전하였다. 한편 1954년 복싱 명문 천호 상전 출신의 전학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유종만 (원광대) 과 백중세의 경기를 펼친 복서로 현역시절 박태국 이거성 서인석 유인봉 최진식 강우영등 명복서 들을 차례로 제압한 정교한 테크니션이었다. 1979년 7월 모스크바 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이현주는 박태국(해태제과)에 판정패 출전권을 상실한다.

81년 킹스컵 대회 에서 맞붙은 김완수(왼쪽)와 이현주


1981년 4월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대회에서 이현주는 홈링의 블라시우스를 꺾교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올림픽에 출전하지못한 상실감을 달랜다. 그해 6월 킹스컵 본선 결승에서 케냐 선수에게 4ㅡ1 판정패 은메달을 획득한 그는 한일 국가대항전 2연패 포함 국제대회 3관왕을 이룩한다. 이현주는 목포대 재학시절 문성길 전칠성 장성호 권현규와 연합 전국최강 목포대 위용을 과시한 주역이었다. 얼마전 타계한 이현주의 전남체고 1년 선배 박기철은 문성길은 체력에 의존한 파워 복싱을 펼쳤다. 하지만 이현주는 반사 신경과 지구력 스피드가 결합된 클라스가 한단계 높은 복서라고 평가했다. 1985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현주는 전남체육회 직원으로 근무하다 새천년 전남 무안에 신설된 전남체고 체육 교사로 부임 2022 전국 종별선수권 종합우승을 포함 여러 차례 혁혁한 성과를 창출하고 2년 전 정년 퇴임 현재 대한 복싱협회 기술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박태국(왼쪽)과 격돌하는 이현주


1956년 전북 군산태생의 김완수는 1975년 제56회 전국체전에 전북 대표로 출전 플라이급 결승에서 국가대표 박찬희(한영고)에 판정패 했지만 빼어난 경기력을 인정받았다. 1978년 원광대 재학시절 김완수는 김명복 배 대통령 배 전국체전 아시아 선수권 선발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전국대회 4관왕을 이룩한다. 특히 아시아 선수권 선발전과 김명복 박사배 대회에서는 최우수복서(MVP)로 뽑혀 주목을 받았다. 김완수는 수양버들처럼 유연한 보디웍과 헤드웍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 시킨후 다양한 공격 패턴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클레버 복서였다. 1979년 수경사에 입대한 김완수는 7월 베네주엘라에서 개최된 제31회 세계 군인선수권대회(페더급)에 출전 4강전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 서독의 노베르토 랑구토에 3회 RSC 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한다.

조계현 기아타이거즈 단장(왼쪾)과 김완수


그러나 결승전에서 홈링의 케사르 살라자르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문다. 이에 분함을 참지 못한 이진백 단장(이진삼 육군참모총장 친동생)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울분을 토할 정도로 내용상 김완수가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1981년 7월 수경사 선수단은 미국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다. 목적지 오하이오주 뉴어크시에 도착 숙소로 향하는 도중 길거리에서 때마침 1981년 7월 10일 오하이오주 뉴어크시에서 개최된 제1회 청소년 세계 야구에 출전한 선동렬(고려대) 을 포함한 야구대표팀과 마주친다. 그때 김완수는 그곳에서 동향의 조계현과 만나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리고 지난 2023년 3월 필자의 모친상에 두 사람이 나란히 참석 42년 만에 해후(邂逅)하였다. 우리네 삶은 일상의 작은 요소들이 모여 추억이란 이름으로 완성된다. 설혹 잊을수 없는 모멸(侮蔑)을 간직한 가슴 아픈 추억일지라도 되돌아보는 순간만큼은 아름답다. 왜냐면 추억은 재현(再現)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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