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특별사면은 ‘국민통합’이라는 대의로 포장됐지만, 실제 효과는 인물별로 극명하게 달랐다. 정부는 8월 15일자로 대규모 사면·복권을 단행했고, 명단에는 조국, 정경심, 최강욱, 윤미향 등이 포함됐다. 숫자와 명분은 풍성했으나, 민심의 체감은 정교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사면은 권력의 ‘시간 단축 기술’이다. 긴 분쟁의 끝을 절차적으로 앞당겨 정치 어젠다를 새로 짜게 한다. 법학자 블랙스톤이 사면을 “권력의 가장 호의적인 특권”이라 불렀던 이유도 여기에 가깝다. 다만 민주주의에서 그 특권은 민심의 검증을 지속적으로 통과해야만 정당성을 얻는다. 이번 사면의 정치적 수지는 조국·최강욱·정경심에게는 ‘정치 복원’의 통로를, 윤미향에게는 ‘도덕성 역풍’의 바람길을 열었다.
먼저 조국 사면은 장기 소모전의 종식을 선언한 측면이 크다. 입시·감찰 등으로 이어진 사건군을 사법적으로 종결시키면서 정치적 논쟁의 초점을 ‘정책과 미래’로 돌릴 여지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조국 개인이 아니라 사건 연루군을 묶어 처리했다는 점에서 형평의 설득력을 확보했다. 정경심은 삶의 복귀 단계로 넘어갈 최소한의 제도적 문을 얻었고, 최강욱은 ‘정치 정상화’라는 프레임에 탑승할 기회를 확보했다. 이 셋의 사면은 지지층 결집을 촉진하고, 피로한 민심에 ‘종결’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 지점에서 사면은 통합의 언어가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정책 성과로 빠르게 전환하지 못하면 ‘내 편 챙기기’로 회귀한다는 점이 위험 요인이다. 실제로 단기 지표는 꺾였다. 리얼미터 8월 1주차 기준 대통령 지지율은 56.5%로 하락했는데, 조국 사면 확정 이슈와 겹치며 중도·보수, 청년층에서 이탈 조짐이 포착됐다. 지지율은 결과이자 시그널이다. 사면 이후 메시지·인사·정책으로 신속하게 보완하지 못하면 신호는 곧 추세가 된다.
반면 윤미향 사면은 상징의 역풍을 불렀다. 법원은 후원금 횡령 관련 유죄 판단을 내렸고, 그 사건의 성격상 ‘공익 신뢰’가 핵심이다. 사면이 법적 형벌을 지우더라도 사회적 신뢰의 균열까지 복원하진 못한다. 특히 광복절이라는 상징적 날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도덕성을 흔들었던 인물을 같은 테이블에 앉힌 선택은 통합의 언어를 희석시켰다. 이 결정은 진영 결집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중도 다수의 상식과 정서를 건드린다. 그래서 윤미향 사면은 전체 사면 패키지의 ‘약한 고리’가 됐다. 시민단체와 여론의 비판 포인트가 한 곳으로 응집되면서, 통합 프레임을 방어할 정부의 논리가 빈틈을 드러냈다.
사면의 미학은 ‘책임-회복-재통합’의 사다리를 얼마나 설계했느냐로 판가름난다. 책임의 단계에서 무엇이 충분했는지, 회복의 단계에서 누가 어떻게 치유되는지, 재통합의 단계에서 어떤 공적 약속이 갱신되는지 명확해야 한다. 이번 사면은 책임과 회복의 선을 인물별로 다르게 그었다. 조국·최강욱·정경심에게서는 길게 끌던 논쟁의 종결성과 형평의 맥락을 읽을 수 있다. 반대로 윤미향에게서는 ‘피해자와 기부자 신뢰’라는 공적 가치의 복원이 충분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통합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절차와 언어의 합이다. 피해자 설명, 기부금 투명성 강화, 재발 방지 장치라는 구체를 동반하지 않는 사면은, 통합의 외피를 쓰고도 분열의 실질을 남긴다.
정치는 갈등을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대신 갈등을 관리하고 새로운 합의를 설계하는 기술로 존재한다. 이번 사면이 진정 ‘정치 복원’의 출발점이 되려면, 정부는 조국 사면이 만든 시간의 여유를 정책 성과로 환전해야 하고, 윤미향 사면이 만든 도덕의 공백을 제도 개선으로 메워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낡은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면이 권력의 선의가 아니라 공적 책임과 미래 약속의 구조로 보일 때, 비로소 통합은 말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사면은 정치의 거울이다. 그 거울에 비친 민심의 표정이 무엇인지,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광복절특별사면 #조국사면 #정경심 #최강욱 #윤미향사면 #여론동향 #정치복원 #국민통합 #도덕성 #정치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