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소순일기자]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 지도 위에 점 하나로 찍히는 이곳은 외견상 특별한 것이 없는 시골 마을이다.

남원 유천서원 전경


그러나 마을 뒷쪽 숨은 듯 놓인 담장 하나가 낯선 방문객의 발걸음을 붙든다. 바로 유천서원, 혹은 ‘오현사(五賢詞)’로 불리던 이곳은 다섯 명의 현인을 기리던 서원의 옛터다.

서원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야기와 숨결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 유천서원은 1830년, 순조 30년에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방사량, 방귀온, 안전, 방응현, 안창국. 다섯 명의 위패를 모시고 지역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 대신 남은 것은 단 하나, 무성한 잡초를 비집고 세월을 견뎌낸 석비와 작은 단(壇), 그리고 상석이다. 다섯 인물을 향한 존경심은 바래지 않았다.


그러나 서원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을 피하지 못했다. 역사의 칼날은 곧은 정신을 향해 휘둘러졌고, 유천서원도 그 해에 훼철되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후손들은 기억을 포기하지 않았다. 1909년, 서원이 있던 자리에 ‘오현서원유허비(五賢書院遺墟碑)’라는 비석 하나를 세워 그 정신을 기렸다.

문화재로도 인정받아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2호로 지정됐고, 이후 행정 절차에 따라 문화재청의 고시로 지정번호는 사라졌지만 ‘문화재자료’로서의 지위는 유지되고 있다.

기자는 최근 이곳을 찾았다. 정문도 없고, 강당도 없고, 숙소도 없는 ‘비어 있음’의 현장이었다.

그 대신 남은 것은 단 하나, 무성한 잡초를 비집고 세월을 견뎌낸 석비와 작은 단(壇), 그리고 상석이다. 다섯 인물을 향한 존경심은 바래지 않았다.

한편 위패의 일부는 현재 주생역 근처의 정각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안씨 문중에서 안전과 안창국 두 사람의 위패를 그곳에 모셨기 때문이다.

현재 유천서원 자리에는 방귀온, 방사량, 방응현 세 명의 위패만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현인의 이름은 마을의 정신 속에서 계속 살아남고 있다.

주변 주민 한 사람은 “예전엔 이곳이 제를 지내던 신성한 곳이었지요. 지금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가끔 자식들 데리고 조용히 다녀가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 화살표 있는곳이 유천서원이다.


이곳은 더 이상 서원이 아니다. 그러나 지워진 공간이 오히려 질문을 낳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야 할까. 유천서원은 그런 질문을 품고, 담장 너머 고요히 시간을 견디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유천서원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건물도 없고 사람도 없다. 하지만 다섯 명의 현인이 걸었던 길은 지금도 조용히 우리 곁을 걷고 있다.

시사의창 소순일기자 antlaan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