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수회담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예상대로 구체적 합의 이룬 건 없지만 '의미 있는 첫 만남'

김건희 여사 문제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 발언에 尹 침묵
'해병대 채상병 특검 및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수용 요구

정용일 승인 2024.04.30 14:23 | 최종 수정 2024.04.30 14:51 의견 0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진작 만났어야 할 두 사람이었지만 이제서야 한 자리에 함께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공식 회담은 대선 후 처음으로, 당초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어 2시간10분가량 진행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수석대변인, 천준호 대표비서실장, 진성준 정책위의장, 이 대표, 윤 대통령,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회담 종료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대표는 언론에 공개된 회담 모두 발언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했고, 윤 대통령은 15분간 이어진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을 끝까지 듣고 개별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여러 대화가 오갔다는 점만으로도 성과 있는 첫 만남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예상대로 구체적인 합의에 이른 건 없었다. 민생 회복이 가장 시급한 국가 과제라는 총론에 인식을 같이했을 뿐, 각론에선 견해차를 드러냈다. 회담 주요 의제로 꼽힌 민주당의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 공약에 대해 이 대표는 "꼭 수용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어려운 분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난색을 보였다.

연금개혁 문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 대표가 "정부가 방향을 정해달라"고 하자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회에 많은 데이터를 제공했다"며 공을 넘겼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거부권 행사 자제를 요청하는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대해서도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나 민간조사위에 영장 청구권 부여 같은 법리적 문제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여야정협의체' 구성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해야 한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거의 모든 현안마다 간극이 크다 보니 정작 중요한 한덕수 총리의 후임 인선 문제도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을 향한 이 대표의 직접적인 요구에 난색을 표했던 윤 대통령은 당시의 표정만으로도 불편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과거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채상병 특검) 및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수용하라고 직접 요구했다.

또한 이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총선의 민의를 존중해 달라"며 이같이 요구했다. 그러면서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고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며 정중하게 요청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159명 국민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던 이태원 참사, 채 해병 순직 사건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채 해병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달라"고 요청했다.

29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 매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 장면이 TV로 보도되고 있다./연합뉴스


특히 이 대표는 공개 발언 때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윤 대통령)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가 누구인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선 김건희 여사 문제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우회적으로 특검 수용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비공개 회담에서는 해당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수였다. 예상대로 구체적인 합의에 이른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이다. 또한 일부 성과도 있었다. 의료 개혁이 시급한 과제이고, 이를 위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윤 대통령에게 이 대표가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고 적극 호응한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 첫 회담을 계기로 자주 만나기로 한 것도 성과다. 앞으로 만날 때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정치 복원을 알리는 신호라 할 것이다.

한두 번 만나는 것으로 입장차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가 이해의 폭을 넓히려면 공식 소통 구조를 갖춰야 한다. 여야정협의체도 그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윤 대통령이 야당의 말에 귀를 열고 합리적 비판이라면 적극 수용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야당도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도한 요구는 자제하고 국익 차원에서 협력할 건 협력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회담 후 여당은 "협치의 첫발을 떼는 출발점"이라 했고,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쉽지만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고 했다. 양측 모두 긍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이제부턴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여야가 무한 갈등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의 틀을 마련하는 데 노력하기를 바란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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