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중의 여행에세이] 수암골 이야기

편집부 승인 2024.04.05 14:31 의견 0
수암골 전망대에서 본 석양


[시사의창 2024년 4월호=김차중 작가] 나에게 수암골 이야기가 하나 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 아마도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네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이모는 아이가 생기질 않아 다섯 남매의 막둥이인 나를 잠시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 순수 어릴 적 기억으로 그 집은 언덕 길가에 있었고, 아래로 급경사진 곳으로 오직 걸을 수 있는 길만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집으로 드나드는 문은 작은 대문이 있었고 대문 옆으로 보통 가게의 문으로 쓰이던 나무로 된 삐걱거리는 여닫이문이 있었다. 대문을 열면 어린아이의 눈으로도 작았던 마당이 간신히 정오의 햇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잔칫날이었는지 부엌에서 고기로 구슬 같은 완자를 만드는 이모의 손이 신기해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먹었던 기억과 맛은 생각나질 않는다. 나는 반년 정도 이모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모가 엄마에게 나를 넘겨주었지만, 이모의 지극한 보살핌에 만족했던지 나는 엄마를 몰라보았다고 한다. 나의 기억에 남겨진 몇 개의 흑역사 중 한 가지이다.

수암골벽화
수암골벽화


40여 년이 흐르고 나는 다시 수암골에 올랐다. 수암골은 한국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높은 언덕에 정착하여 살게 된 마을이다. 수암골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이 마을 이름의 기원일까 생각하였는데 수암골은 수동과 우암동의 경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수암골은 서울의 마로니에 공원에서 낙산공원에 이르는 길처럼 좁은 골목과 벽화가 이어진 길로 가꾸어졌다. 2007년부터 ‘추억의 골목 여행’의 주제로 충북의 화가와 대학생들이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왕 닭과 왕자 병아리, 샤워하는 여인의 실루엣, 심순애의 결단을 기다리는 이수일과 김중배, 그리고 그대로 남아서 벽화가 된 새마을운동 마크와 표어인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글자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특별한 소재의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에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걸을 수 없다.

수암골 벽화거리


이 벽화로 인하여 수암골은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가 되었다.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등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게다가 골목 입구에는 드라마의 거장 김수현 작가와 청주시가 설립한 “김수현 드라마아트홀”이 건립되었다.
2019년 10월에 개관하였는데 김수현 작가가 저술한 수 천 권은 됨직한 책들과 드라마 대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기 최고조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는지 놀랄 뿐이다. 김수현 작가가 머무는 공간과 작업실로 사용되는 건물은 옛 청주시장의 관사다. 드라마전시관 관람을 마친 후, 김수연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열절 때문이었을까? “열심히 살아야지! 부지런히 살아야지”라는 다짐이 생겨난다.

수암골의 옛모습


개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갤러리에 들어섰다. 갤러리가 거리에 주는 효과가 한 가지 있다. 카페나 식당, 물건을 파는 상점과 달리 갤러리는 내부 전체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 갤러리는 다른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바뀜으로 인하여 거리에 생명력을 준다. 호기심과 기대로 갤러리의 문을 들어선다. 딱딱한 공간을 채운 예술품들, 작가의 혼을 담은 작품들이 짙은 물감의 향을 뿜어낸다. 회화의 기법은 잘 모를 일이지만 작품에 대한 감탄정도는 할 수 있다. 한 가지 창작의 영감을 얻어간다.

김수현 작가의 집무실
김수현 드라마아트센터 내부


그림이라는 문화의 힘이 우암산 비탈의 좁은 골목의 왜소한 마을이 청주의 자랑거리로 변모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망 좋은 곳마다 5층 건물 규모의 카페들이 이미 들어섰고 저녁이면 야경을 즐기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빈다. 수암골의 종착지 수암골 전망대는 민낯의 청주시가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 놀이하듯 연인들은 온갖 포즈로 출현한다.
해가 지고 노을빛에 물든 청주의 하늘과 그 아래로 하나둘 켜지는 민가의 불빛들이 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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