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뭐 있어?] 채움보다 비움이 있는 여행은 울림이 크다

또 하나의 나,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으로의 여행

편집부 승인 2024.04.05 14:22 의견 0

최근 하루 동안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 간 소통 문제가 우려할 수준이다. 가장 가깝지만, 멀어질 수도 있는 사이가 가족 관계라고도 한다. ‘가족여행 뭐 있어?’ 늘 고민이 많다. 지금까지 내 가족과의 여행은 행복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왔는데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한다.

채움보다 비움이 더 울림이 크다는 것을 일깨워 준 크리스마스트리 나무 - 비에이

[시사의창 2024년 4월호=서병철 기자] 겨울 왕국이 바로 여기다. 가는 도시마다 사람 키보다 큰 눈이 쌓여 있다. 눈을 치우기조차 어렵게 다시 눈이 내린다. 그럼에도 눈이 내리면 동심으로 돌아가서 우리 부부는 서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평생 볼 눈을 다 본 듯하다. 또한 가보지 않은 낯선 여행지이기에 설렘이 더하다. 이번 여정은 과연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 기대하며 함께 떠나보자.

쇄빙선에서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유빙에 감동하다 - 아바라시


쇄빙선, 유빙에 둘러싸여서 흥분하다!
일본 홋카이도 아바라시라는 작은 도시에 왔다. 쇄빙선을 타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타고 싶은 욕구가 워낙 강해서 예약 성공을 해서 매우 기뻤다. 쇄빙선이 두 가지 종류인데 예약한 ‘Galinko III’는 호텔에서 무려 차로 약 3시간 거리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대안은 도보 거리에 ‘오로라호’인데 어젯밤에 부랴부랴 예약을 시도했으나 매진인 듯했다. 아내가 “혹시나 취소한 표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가보자”라고 했다. 매표소에서 자신 없이 물었다. “9시 쇄빙선 타려 하는데요?”“예약하셨나요?” 뜨끔했다. ‘안 되는구나!’ 하는 바로 그 순간, “아, 예약은 상관없어요. 몇 명이세요.” 8천 엔을 계산했는데 이렇게 돈이 아깝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행이었다. 역시 인생이든 여행이든 시도해 봐야 한다. 하고자 하면 이렇게 달아난 기회도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이윽고 오로라호가 떠나고 잠시 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유빙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파도를 타고 넘실대며 다가오더니 아예 군집을 이루며 마침내 배와 함께 우리 부부를 가두어 버렸다. 유빙의 모습이 해에 비치고, 배로 인해 그늘진 부분 색상이 시시때때로 색다른 푸른색을 연출한다. 배가 지나간 곳만 길이 생기고 나머지는 모두 유빙이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흥분이 되어 사진과 동영상 찍느라 영하 18도의 혹독한 추위도 잊었다. ‘아! 여기 일정을 넣기를 정말 잘했네’ 짧은 시간이었지만 쇄빙선에서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유빙, 감동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한 시간 그 자체였다.

늠름한 장군 모습의 세븐스타 나무 – 비에이


채움보다 비움이 중요함을 자연을 통해 배운다
조용한 시골 마을‘비에이’의‘세븐스타 나무’라는 유명한 나무 앞에 도착했다. 풍성한 한 그루의 떡갈나무인데 일본 관광 담배 세븐스타에 모델이 된 이후로 유명해진 나무이다. 살짝 비스듬히 기울어졌으나 당당하고 늠름한 장군의 모습 같았다. 옆에 자작나무가 일렬로 장군을 따라 행진하는 듯하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크리스마스트리’ 나무다. 눈 덮인 밭 사이에 홀로 한 그루 나무가 반대편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과 함께 해가 비치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커다랗고 흰 캔버스 위에 작은 나무 한 그루,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사람이 많아서 아쉬웠지만 잠시나마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텅 빈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적이 언제였던가.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열심히 살아왔던 과거 나의 모습도 떠올랐다. 저기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는 지금 내 모습은 아닐까. 외로운 듯 보이지만 채움을 내려놓고 비우기 위해 준비하는 나의 모습 말이다. 시도하면 언젠가 비움을 통해 새로운 채움의 시간도 오지 않을까.
탁신관 갤러리가 주변에 있어 들렀다. 비에이와 후라노 지역을 전 세계에 알린 ‘마에다 겐조’라는 유명한 풍경 사진작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와우!’ 감탄이 저절로 나는 풍경 사진 작품들이 많았다. 시간에 따른 하늘과 구름의 변화무쌍함, 계절에 따른 밭과 밭 사이의 색상 변화, 홀로 혹은 몇 개만 외로이 서 있는 나무 등 사진을 보자 ‘마음의 평온’이라는 아주 오래된 친한 친구를 만난 듯했다. 한 사진 작가의 작품으로 인해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이 작은 도시, 비에이를 찾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동화 나라 같은 오두막 수공예품 가게가 즐비한 ‘닝구르 테라스’는 저녁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조명이 켜지면서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눈이 하얗게 덮인 작은 통나무집 가게는 자연을 모티브로 나뭇가지, 호두 껍데기, 꽃잎, 천연가죽 등을 이용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걸어가기만 해도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동화 속 만화 주인공이 되는 착각의 시간도 즐길 수 있다.

오르골 소리가 환상적인 오르골 뮤지엄 – 오타루


100년 전 과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오타루, 역시 낭만이 가득하다
100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영화 세트장 같은 곳 오타루, 삿포로역에서 JR 기차를 타고 오타루 역이 아닌 한 정거장 전 역인 JR미나미오타루 역에서 내리면 좋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걷기만 해도 즐겁다. 한국 젊은 여인 관광객들의 한국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100년 된 2층 벽돌 건물인 오르골 뮤지엄에 들어서면 온통 오르골 소리로 가득했다. 저렴한 것도 있지만 무려 6천만의 고가 오르골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판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맨 위층에서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동영상을 찍는데 흘러나오는 오르골 소리가 자동으로 배경 음악처럼 나왔다. 나와서 걷다가 치즈 케이크 맛집에서 메뉴를 선택하면서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맛을 보니 치즈 향이 물씬 풍기며 왜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찾는 이유에 고객을 끄덕이게 했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 시리즈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만화 주인공 쇼타의 고향이 바로 오타루이다. ‘당연히 여기서 초밥을 먹어야지’ 하지만 유명한 초밥집은 예약이 쉽지 않았다. 걷다가 그냥 들어간 초밥집, 외국인 5명을 서빙하면서 노인 부부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우리 부부를 위한 오로지 한 테이블만 가능했다. 청색 투명한 동그란 접시에 12가지 종류의 시그니처 초밥 메뉴가 따뜻한 사케와 함께 등장했다. 초밥의 회는 싱싱하고 부드럽고 쫄깃하고 달착지근하기도 했다. 초밥을 먹고 나서 더 이상 오늘 일정이 필요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오타루는 크고 작은 유리 공예관으로도 유명하다. 문 앞에 귀여운 눈사람이 인상적인 오래된 유리 공예 상점도 눈에 띄었다. 안에 들어가면 춤추는 그릇, 값비싼 장식 그릇, 생활용품 그릇 등 다양했는데 아내는 푸른 빛이 도는 작은 종지 그릇을 사기도 했다. 운하의 마을 오타루에 가면 반드시 타야 한다고 해서 운하 선착장으로 갔다. 아뿔싸 강한 바람과 폭설로 인해 오늘 운항이 중단되었다. 아쉬웠지만 밤에 수십 개의 가스 가로등이 켜져 한층 분위기 있는 오타루 운하 광경에 취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동화 나라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닝구르 테라스 – 비에이


공원에서 아이처럼 놀기
삿포로에서 계획이 전혀 없었다. 잠시 생각 후, 우리 부부가 선택한 곳은 모에레누마 공원이었다.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조경사인 노구치 이사무가 생애 마지막으로 몰두한 예술공원이다. 쓰레기 처리장이었던 부지에 공원 전체를 하나의 조각 작품화했다. “아주 작은 저것이 뭐지”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하얀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움직임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금 가까이 가보니 바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이었다. 잠시 주저함도 없이 ‘우리도 즐겨야지’ 하며 눈썰매 2대를 대여하고 신나게 즐겼다. 나이 먹으면 아이가 된다고 하던데 오늘은 '늙은 아이'로 변신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눈 덮인 경치는 말이 필요 없다. 간신히 내려와서 유리 피라미드 건축물 내부와 마침 진행 중인 삿포로 국제 예술제를 감상했다. 계획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더 즐거움을 주는 것, 바로 즉흥 여행의 묘미다.

가스 가로등이 켜진 운치 있는 오타루 운하 – 오타루


게를 먹기 위한 전략
어느덧 홋카이도 여행 마지막 저녁이다. 털게를 먹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는데, 문제는 맛집은 예약이 안 되었다. 현지인 찬스를 써야겠다는 순간 생각이 들어서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직원에서 맛집 추천과 예약을 부탁했다. ‘이 정도쯤이야’ 하던 직원이 표정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어두워졌다. ‘오늘 털게 맛집에서 저녁이 어렵겠구나!’하는 순간, 직원이 나에게 한글로 번역된 내용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내가 조금 전에 전화해서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던 그 맛집이었다. “예약은 불가능하나, 와서 대기하면 먹을 수도 있다.” 호텔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털게 집으로 향했다. 입구가 너무 한산해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2, 3, 4층이 매장이었다. 직원은 대기하라고 무뚝뚝하게 말할 뿐이다. 기다리는데 3팀이 왔다가 그냥 나갔다.
우리 부부는 달랐다. 보여준 번역기 문구 하나가 작으나마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기다림을 감수할 수 있었다. 15분 정도 긴 시간이 지나자, 우리 부부를 불렀다. 4층으로 올라갔더니 와우! 일본의 전형적인 고급 식당 내부 장식을 했고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인이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방도 엄청나게 커서 둘이 먹기에 미안할 정도였다. 추천받은 메뉴로 주문했는데 첫 음식부터 맛이 심상치 않다. 계란 위에 얻은 게살이 싱싱하고 달착지근해서 맛있다. 두 번째 주메뉴가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게 사시미와 털게 반 마리가 먹기 좋게 반쪽 잘라 나왔다. 게 사시미는 난생처음 먹는데, 입속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다. “아 오늘 정말 여기 오기 잘했다.” 아내가 연신 미소를 짓는다. “어제 별로였던 오뎅바 저녁 실수는 용서해 줄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털 게는 싱싱하고 맛있으나 영덕 게보다는 못한 것 같다. 아무튼 최고의 저녁 식사를 즐겼다.

모에레누마 공원에서 썰매 타며 아이처럼 놀기 – 삿포로



“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우리를 얽매는 ‘채움’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일의 작가 미하엘 콜르트의 명언이다. 최대한 많은 명소를 보고, 사진 찍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에 애쓰는 여행객이 여전히 많다. 물론 여행하면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넣어야 할 일정이 바로 ‘비움’이다. 홋카이도의 겨울 열차 여행이 바로 그 여정이었다. 순백색의 눈과 저 멀리 보이는 구릉 위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만으로 행복했다. 비울 수 있어 더 좋았던 홋카이도 겨울 여행이었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저작권자 ⓒ 시사의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