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창] 영화 ‘시민덕희’를 통해 살펴 본 안타까운 현실, 그리고 필자의 생각

편집부 승인 2024.04.05 13:48 의견 0
영화 <시민덕희> 포스터


[시사의창 2024년 4월호=의향도 (웹소설 작가)] 들어가며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인 2011년경의 일이었다. 필자한테 갑자기 발신번호가 뜨지 않는 의문의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발신자는 뜬금없이 자신을 대검찰청 검사라고 소개하면서 필자의 범죄 혐의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했다. 나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나의 범죄 혐의에 대해 대검찰청 검사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필자는 당연히 지인 중 누군가가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고 태연하게 "네. 말씀하세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발신자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물론 존재하지도 않던 필자의 범죄 혐의로 또 연락이 온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누군가의 장난전화였겠거니 생각했는데 나중에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지인들은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는 전화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검사라고 하는데도 필자가 워낙 태연하게 전화를 받으니 자신들이 원하는 반응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화를 끊은 것이 아니었겠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받았던 뜬금없는 전화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지인들의 말대로 보이스피싱 전화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성인이라면 한번쯤은 알게 모르게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아봤을 것이다. 그것이 미수에 그쳤든 또는 사기에 당해 손해를 입었든, 누구도 보이스피싱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등장한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악질 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듯 하다.
영화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다루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해 3천2백만원을 사기당한 주인공이 나온다. 그러나 경찰들이 범인을 잡는 여느 첩보영화와는 달리, 피해자가 직접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줄거리가 이어진다. 매우 비현실적인 줄거리 같은 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니 필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구성방식도 좋았고 줄거리도 재미있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영화 ‘시민덕희’에서 전개되는 줄거리를 살펴보고 실화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영화를 통한 시사점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겠다.

영화 <시민덕희> 속 장면


살펴보기
영화 '시민덕희'는 영화 '선희와 슬기'를 연출했던 박영주 감독이 연출한 첫 상업영화다. 박영주 감독은 1985년생의 젊은 여성 감독이다. 배우로는 라미란, 공명, 엄혜란, 장윤주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2024년 1월 24일 개봉했고 관객수 170만명을 기록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세탁소를 운영하던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는 이야기’이다. 이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자칫하면 어두운 분위기가 될 수 있는 영화에 코미디까지 더해 어두움과 밝음의 조화가 제법 잘 어우러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작품의 주요 장면, 대사를 살펴보며 필자의 생각을 공유해보겠다.

①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렇지 8번이나...”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세탁소 화재로 모든 걸 잃고 큰 좌절에 빠져야 했던 중년의 여인 김덕희(라미란)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중은행 한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두 사람의 통화내용은 이러했다.
“화성은행 손진영 대리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대출하시려 저희 은행 방문하셨잖아요.”
“자격 안된다면서요.”
“이건 햇살론이라고 저소득 서민 맞춤으로 나온 상품인데 고객님은 2천까지 가능하시거든요.”
“그러면 나도 대출 돼요?”
손진영 대리는 대출을 받으려면 먼저 돈을 입금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거 진짜 너무 아까운데 어디 돈빌릴 데 없으세요?”, “제가 남 같지 않아서 그래요. 저희 어머니도 세탁소 하시거든요.” 등의 말을 하며 김덕희를 현혹시켰다. 그렇게 김덕희는 손진영 대리의 요청대로 돈을 입금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자신이 전화통화했던 손진영 대리는 화성은행의 손진영 대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자신은 보이스피싱에 의해 사기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김덕희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의 반응은 매우 시큰둥했다.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렇지 8번이나...”라고 하면서 피해자 탓을 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김덕희는 “집에 불 나 봤어요? 전 재산이 다 탔는데 보험도 안돼, 생계도 끊겨, 길거리에 나앉아 봤어요?”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만이 아님을 강조했다.

② “김덕희씨한테 제보하려고 하니까요”
절박한 마음으로 경찰에세 하소연했지만 돈을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에 축 늘어진 어깨로 돌아가던 길, 자신을 속였던 손진영 대리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손진영 대리는 김덕희에게 제보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야. 너 나한테 또 사기치냐?”는 김덕희의 말에 손진영 대리는 “진짜에요. 믿어주세요. 나도 여기 붙잡혀서 억지로 하는 거니까요.”라고 말하며 사기를 치고 있는 자신 역시 사실은 취업사기를 통해 억울하게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또 한번의 함정일 수 있었지만 김덕희는 경찰서에 가서 손진영의 제보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경찰로부터 돌아온 것은 심증뿐인 사기꾼 제보를 믿을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 뿐이었다.
하지만 손대리의 제보를 믿었던 김덕희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중국 칭다오로 넘어가 사적인 작전을 개시했다.
그 와중에 손대리는 김덕희 앞으로 400장 정도의 팩스를 보냈고, 그 자료를 받은 경찰들은 그제서야 움직임을 시작했다.

③ “내 잘못 아니고, 절실한 사람들 등쳐먹는 너. 네가 잘못한 거야.”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콜센터의 단서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김덕희의 끈질긴 노력과 손대리의 적극제보로 인해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김덕희는 총책이 있는 곳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런데 경찰들이 온다는 것을 감지한 보이스피싱 총책은 잽싸게 도주하려 하고 김덕희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총책을 추격하며 공항까지 따라왔다.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왔다는 사실을 눈치챈 총책은 김덕희 앞에 나타났고, 김덕희와 총책,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러했다.
“왜 자꾸 졸졸 따라다니냐고, 경찰이야? 스토커야? 뭐야?”
덕희는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고 이렇게 답했다.
“피해자다.”
“뭐?”
“보이스피싱 당했다고, 너한테”
“얼마 뜯겼어?”
“3천 2백”
“아이 등신. 삼천이백? 겨우 그 돈 때문에 나 쫓아왔어?”
총책은 김덕희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돈을 건넸다.
“10만달러야. 한화로 1억 넘을 거야. 이거 갖고 가든지, 아니면 사람을 시켜서 쥐도 새도 모르게 너희들을 확 죽여버릴까?”
“...”
“건들지 말란 얘기야. 그리고 좀 웃어. 남는 장사한 거잖아. 응?”
그렇게 말하고 총책은 자리를 떠나려 한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 도주하려는 총책에게 김덕희는 다시한번 용기를 내어 마주한다. 김덕희의 손은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그녀는 총책이 준 돈을 다시 총책에게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가져가 이 새끼야. 사기 당한 게 내 탓이냐? 사기당한 내가 등신이냐구? 아니야. 내 잘못 아니고 절실한 사람들 등쳐먹는 너. 네가 잘못한 거야. 자수해.”
김덕희는 용기를 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총책에게 화장실에 끌려가 마구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김덕희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경찰들이 출동할 시간을 벌어줬고, 결국 총책은 경찰에 의해 검거되고 말았다.

영화 <시민덕희> 속 장면


필자의 생각
① 실제 사건에서는?

영화에서도 경찰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로 관객들에게 소위 ‘고구마’를 선사했다. 그런데 실제 사건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화 속 경찰보다 훨씬 더 고구마를 느끼게 했다.
실제 사건의 주인공 김성자씨는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약 32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한달 후 보이스피싱범에게 다시 연락이 왔는데 이 피싱범은 범죄 조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영화와 실제 사건이 동일하다.
김성자씨는 피싱범으로부터 총책의 인적사항과 한국에 입국하는 날자와 비행기 도착시간 등의 정보를 받았고, 김성자씨는 경찰서에 알렸지만 경찰들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김성자씨가 스스로 총책의 사진, 은신처 정보, 중국 사무실 주소, 보이스피싱 피해자 명부 등 자료와 단서를 직접 모아 경찰에 제출해 경찰에서 검거에 성공했다. 총책을 잡기 위해 중국에 건너갔던 영화와 달리 실제 사건에서는 한국에서 범인을 잡았다는 것이 다르다.
경찰이 총책을 검거함에 있어서 김성자씨의 공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경찰은 김성자씨에게 신고 보상금 마저 누락하였고, 김성자씨는 그 어떤 피해보상도 받지 못했다. 김성자씨는 해당 경찰서의 업무태만과 신고 무시 등을 이유로 경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하였지만 아직까지 해결된 것은 없다고 한다.

② 국민들 스스로 나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수년 전, 가황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유관순 열사,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 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며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라고 말이다.
영화 ‘시민덕희’를 보면서도, 영화 관람 이후 실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가황 나훈아의 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악질 범죄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당하면 경찰과 공권력이 혼을 내주고 도와줘야 하는데 피해 당사자가 나서서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뿐 아니라 국민의 노력으로 범죄자를 잡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국가가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민의 의무가 명기되어 있다.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등이 그것이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권리들도 보장받도록 되어 있다.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 등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으며, 헌법 제7조 제1항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다.
굳이 헌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런데 영화 ‘시민덕희’의 실제 주인공인 김성자씨는 국가와 공무원으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말을 강조해야 하는 현 상황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영화 <시민덕희> 속 장면


보이스피싱 범죄, 언젠가는 반드시 근절되기를
2024년 3월에 발표된 금융감독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총 1,965억원이라고 한다. 전년 대비 514억원 증가된 수치이다. 피해자 수는 감소(‘22년 12,816명 → ’23년 11,503명)하였으나 1천만원 이상 고액 피해사례가 증가함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피해 연령은 50대 및 60대 이상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20대 이하도 12%, 30대도 9.7%를 차지하고 있다. ‘21년에 20대 이하가 3.1%, 30대가 7.3%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20대 30대 피해도 상당히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고령자 뿐 아니라 청장년 층도 경계해야 하는 범죄가 된 셈이다.
또한 최근에는 URL이 포함된 스미싱 문자를 활용하는 범죄가 급증하는 등 보이스 피싱 범죄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23년 피해금액 1,965억원 중 피해자의 지급정지 및 피해구제신청 등으로 피해자에게 환급된 돈은 652억원, 지난해 대비 환급률이 5% 이상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환급률 개선의 이유에 대해 금융감독원에서는 ‘통합신고대응센터’ 개소(‘23년 9월)에 따른 보이스피싱 구제절차 일원화 등으로 신속한 지급정지가 가능해짐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금융당국에서는 금융권의 24시간 대응체계 안착 지원, 비대면 금융사고 피해에 대한 금융기관의 자율배상 실시, AI기술 기반 실시간 보이스피싱 탐지서비스 개발 추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보이스피싱 피해예방교육 실시 등을 향후 대응방안으로 내놓았다.
모든 범죄들이 근절되어야 하겠지만, 특히 절박한 사람들을 상대로 소위 ’억장‘이 무너지게 하는 이 보이스피싱 범죄는 조속한 시일내에 뿌리 뽑혔으면 한다. 이것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안될 것이다. 정부당국의 선제적 예방 노력과 아울러 국민들의 사전 교육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2001년 개봉했던 영화 ’킬러들의 수다‘의 한 장면에서는 경찰이 킬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언젠가 너를 굶겨 죽일 거야”라고 말이다. 그 말은 국민들이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으면 굳이 킬러를 통해 복수를 원할 일이 없을 테니 경찰들이 제 역할을 해서 킬러의 밥줄을 끊어놓겠다는 의미였다.
필자 또한 이 글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굶주림에 허덕여 이러한 범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려면 사전 예방과 현장 대응 등이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연 1만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조금씩 줄어들어 향후 10년, 20년 뒤에는 보이스피싱 범죄이익으로는 도저히 끼니를 떼울 수 없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에 찬 의견을 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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