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귀국에 '상황 종료'인가, '사퇴'인가 與 내부 온도차…거센 역풍에 당황한 기색 역력한 대통령실

지도부 "다 해결" "국민 뜻 따른 것"…일단 봉합하고 국면 전환 시도
수도권 후보들, 李 거취 결단 요구 지속…"총선 지장 주면 원인 없애야"

정용일 승인 2024.03.21 10:30 | 최종 수정 2024.03.21 10:44 의견 0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 황 수석이 MBC를 포함한 일부 출입기자와의 사석에서 '언론인 회칼 테러' '5·18 배후 의혹' 등을 언급한 사실이 알려진 지 엿새 만이다. 대통령실은 이틀 전 만 해도 황 수석 '사퇴설'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냈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에서 계속된 사퇴 요구에 결국 윤 대통령이 경질이 아닌 사퇴 수용 형식으로 부응한 셈이다. 늦었지만 민심을 살핀 당연한 결정이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에게 심경을 밝히고 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던 중 호주로 부임한 이종섭 대사도 21일 오전 귀국했다. 외교부는 이달 25일부터 호주를 비롯해 주요 방산 협력 대상 6개국 대사가 참석하는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열린다고 공지했다. 현 정부에서 6개국 대상 방산협력 공관장회의가 개최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이 일정을 고려하면 지난 10일 출국한 이 대사는 부임 보름도 안 돼 다시 국내에 들어온 것이다.

한 위원장과 여당에서 총선 표심을 앞세워 윤 대통령에게 요구해온 '황상무 사퇴, 이종섭 자진 귀국'이 형식상으로 일단 받아들여진 모양새다. 두 문제를 두고 노출된 당정 갈등 양상은 일단 잦아들게 됐지만 완전히 봉합됐다고 보기엔 이르다. 이 대사가 귀국하더라도 그의 거취에 대한 판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4·10 총선을 목전에 두고 대형 악재로 지목돼 온 '이종섭 주호주 대사·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논란이 정리되는 방향을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대체로 '이만하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20일 한꺼번에 전해진 '이 대사 귀국·황 수석 사퇴' 소식을 출구 삼아 '용산발 리스크'를 털어내고 국면 전환을 도모하려는 모습이다.

한 위원장은 20일 오전 경기도 안양 거리 인사에서 "최근에 있었던, 여러분이 실망하셨던 황상무 수석 문제라든가 이종섭 대사 문제, 결국 오늘 다 해결됐다"고 말했다. 한 주요 당직자 역시 "상황 종료"라며 "추가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엑스맨'이나 다름없다"라고도 했다.

경남 창원 마산합포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최형두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이종섭 대사가 귀국한다"면서 "공수처는 더 이상 수사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는 수사를 지연시켜서 그쪽 사람들을 봐주더니 이제는 수사를 제때 하지 않아 정부·여당의 발목을 묶는다"고 공수처를 비난했다. 반면에 수도권 출마자를 중심으로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이 대사 역시 자진 사퇴 등으로 거취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총선일까지 이 대사 관련 보도가 이어지는 한 야당에 지속적으로 공세의 빌미가 될 수 있고 덩달아 떠난 민심도 돌아올 것 같지 않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불안감은 경륜과 지역 기반을 갖춘 기성 정치인보다 처음 선거에 나서는 '정치 신인' 사이에 상대적으로 더 큰 모습이다. 또 지역적으로는 텃밭인 영남보다 수도권과 중원에 출마한 후보들의 위기감이 역력했다.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민심 헤아리지 못하면 개혁 추진 동력 떨어질 수밖에

'총선 영입인재'인 한 출마자는 "민생이 실종된 선거"라며 "이종섭 대사 문제가 총선 앞두고 지장이 될 수 있다면, 그 원인을 없애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수도권의 한 '험지' 지역구에 도전하는 후보는 "이종섭 대사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국민은 결코 귀국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서울 도봉갑에 나선 김재섭 후보는 "상존했던 위기 요인 두 가지가 오늘부로 해소됐다"면서도 "수도권 민심은 이미 바닥을 찍은 상태다. 이 대사 귀국 반향이 여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주말은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사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던 경기 권역 선대위원장 김학용(경기 안성) 의원은 별도 입장문에서 "황 수석의 사의가 받아들여지고 이 대사도 조기 귀국으로 정리돼 참으로 다행"이라면서도 "수도권 선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위기"라며 경각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안철수(경기 성남분당갑) 공동선대위원장은 통화에서 황 전 수석 사퇴에 "만시지탄"이라며 "이번 일을 교훈으로 민심의 무거움을 깨닫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이 대사 문제에 대해서는 "즉시 귀국해야 한다는 입장은 동일하다"며 '자진사퇴론'에 대해서도 "고려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안보와 경제, 의료개혁 문제 등 다뤄야 할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이 대사의 귀국보다 공수처의 소환이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총선 바닥 민심을 접하는 국민의힘의 일각에서는 이 대사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전히 많은 국민은 피의자 신분인 전직 국방장관이 왜 굳이 대사로 임명됐는지, 게다가 출국금지 사실이 드러나자 서둘러 조사받고 출금 해제 후 곧바로 부임한 이유 등에 대해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당이 전하는 민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지면 윤석열 정부는 뜻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총괄 선대위원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소리다. 당이 내세운 표심이 바로 민심이다.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기대하는 성적을 거둘 수 없다. 그러면 윤석열 정부가 남은 3년 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노동· 연금·교육 개혁을 추진할 동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용일 기자 zzokkoba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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