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뭐 있어?] 황홀한 야경에 취하고 맛에 흠뻑 빠지다

또 하나의 나,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으로의 여행

편집부 승인 2024.03.06 15:30 의견 0

최근 하루 동안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 간 소통 문제가 우려할 수준이다. 가장 가깝지만, 멀어질 수도 있는 사이가 가족 관계라고도 한다. ‘가족여행 뭐 있어?’ 늘 고민이 많다. 지금까지 내 가족과의 여행은 행복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왔는데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한다.

하코다테야마 황홀한 야경 - 하코다테


[시사의창 2024년 3월호=서병철 여행작가] “겨울인데 더 추운 곳을 가는 건, 좀” 나의 여행 제안에 아내는 그리 반기지 않았다. 내심 따뜻한 동남아 여행지를 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 홋카이도 겨울 열차 여행이다. 남한의 85% 면적으로 넓고, 겨울이 한국보다 더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서 주요 교통수단을 열차로 택했다. JR 패스권을 사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처음 가는 홋카이도 지역이라서 나도 설렘이 있다. 자 일본 홋카이도로 함께 떠나보자.

구 하코다테구 공회당의 화려한 색감 – 하코다테


개항기 건축의 흔적을 찾아서
나고야를 경유해서 하코다테로 향하는 비행기 창문을 통해 설산이 이어지더니 곧 바다가 펼쳐진다. 북위 20~55도 무려 35도에 걸친 아주 긴 섬나라, 일본의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향한다. 하코다테 도착 후 첫인상은 한때 홋카이도의 가장 번성했던 항구도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려 애쓰는 도시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왔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1913년에 운행을 시작한 홋카이도 최초의 노면전차를 타고 개항기 건축을 보기 위해 모토마치 언덕으로 갔다. 건축 중 단연 돋보인 것은 ‘구 하코다테구 공회당’ 건물이다. 테라스에서 보는 하코다테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모습이 멋진 다목적 홀이다. 파스텔 블루 외벽에 노란색 띠가 화려하기에 그지없다. 일본 여학생 둘은 과거 의상까지 입고 와서 모델 사진 촬영하듯 공간에서 자기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황홀한 야경, 기대가 “와우!”로 바뀌다
다른 건축물인 구 영국영사관, 하코다테 하리스토스 정교회, 하코다테 성 요한 교회를 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하코다테야마가 보였다. 곤돌라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뷰 맛식당을 들어갔는데 아쉽게도 창가 자리는 만석이었다.
할 수 없이 창가 옆 테이블에서 저녁 식사를 시작하다가 거대한 통창을 바라보는 데 하코다테 시내와 항구에 불빛이 하나씩 켜지는데 장관이 시작되었다.
하코다테에 가면 무조건 야경을 보아야 한다고 매체마다 강력한 추천이 우리 부부를 여기 오게 한 거였다. 당연히 기대하고 갔는데 “와우”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기대가 '와우'로 바뀐 것이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야경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하코다테 야경은 최고 중의 최고다.
한반도 지형 허리를 닮은 듯해서 더욱 끌렸다. 곤돌라에서 본 야경,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본 야경, 하이라이트인 전망대에서 본 야경 각기 맛이 다르다. 황홀한 야경에 술 먹은 것처럼 취했다.

조연이 주연을 압도하다 - 하코다테

조연이 주연을 능가하다
저녁은 일본 전통 선술집 같은 곳에서 하고 싶어서 다이몬 요코초의 작은 선술집을 찾았다. 주인 할머니와 소녀 딸이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제일 잘하는 메뉴가 뭐예요?” 물었더니 다 잘한다고 한다. 한 번 더 재촉했더니 고등어구이를 권했다. 드디어 고등어구이가 나왔다. 두텁고 쫄깃한 식감이 할머니가 음식의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간장 양념이 덮인 오징어를 건넸다. “제가 주문하지 않았는데요”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서비스라고 그냥 먹으라고 주었다. 짜지 않은 간장의 깊은맛과 더불어 신선한 오징어의 쫄깃함이 메인 안주인 고등어구이를 압도하는 것이 아닌가. 영화를 따지면 무명 조연배우가 주연배우의 연기를 능가한 것이다. “오이시이(맛있어요)” 연발했더니 주인 할머니 좋아하면서 미소를 띤다. 최대 8명 손님만 받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장사하는 모습도 정겹고 맛도 있다. 이번 여행 첫 출발이 좋다.

지옥 계곡에서 유황과 산책
일본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 노보리베츠로 가기 위해 JR 열차를 탔다. 눈이 하얗게 덮인 설산과 시골 풍경을 보니 온통 하얀 세상이다. 철길이 바다와 너무 가까워 불안까지 엄습했다. 파고가 높거나 해일이 오면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 체크인한 숙소는 다름 아닌 가성비가 괜찮은 료칸이었다. 방에는 다다미가 깔리고 테이블 위의 전통차,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가 놓여 있었다. ‘일본의 료칸 문화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겠구나’ 생각되었다.
먼저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지옥 계곡 산책길에 나섰다. 입구에서 나무 계단을 내려가서 간헐천까지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우윳빛 유황 온천물, 설산, 바위 위에 흰 눈, 노을, 사람들의 기나긴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오래 머물며 바라보다 보니 구릉 위에 흑 색깔이 보라색, 녹색도 보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모락모락 피어나는 유황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마치 지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지옥 계곡인가.

지옥 계곡에서 간헐천으로 가는 나무 계단 - 노보리베츠


가이세키 요리가 멋과 맛을 동시에 즐기다
료칸에서 궁금했던 가이세키 코스 요리를 맛볼 시간이 되었다. 3단으로 요리가 나왔다. 어떤 음식이 있는지 숨박꼭질하듯이 먼저 열어서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맛은 깔끔하고 담백하다. 찌개, 오뎅, 돼지고기, 오리고기, 이면수구이, 고등어구이 등이 놓여 있는 식탁은 화려한 만찬, 그 자체다. 식사 후 그토록 하고 싶었던 노보리베츠 유황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남녀 별도로 사용하는 공용탕이었다. 대나무로 벽을 치고 발로 벽을 세워서 과거의 전통을 고수했다.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와! 온천욕 하면서 별을 보다니’ 유황 뜨거운 물로 여행의 피로가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다. 목욕 후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놀랐다. 얼굴 피부 윤기가 자르르 흘렀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노보리베츠 온천 효과구나’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부부 혹은 연인들을 위한 개인 온천도 예약제로 운영하니 꼭 체험을 권한다.

구이 장인 할머니와 마주하다 – 구시로


구이 장인 할머니로부터 감동받고, 맛에 감탄하다
음식을 좋아하지만, 여행에서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홋카이도 여행은 달랐다.
노보리베츠 작은 료칸 가이세키 요리, 하코다테의 카이센동도 너무 맛있었다. 하지만 최고는 요리는 ‘구시로 구이’다. 처음 주문한 양념을 얻은 대구구이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다. 표고버섯구이는 버섯 향이 짙게 입 속에 오래 머문다. 정신없게 먹다가 이제야 구이를 굽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멈추고 물끄러미 계속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시선은 오로지 구이에만 몰입해 있었다. 손님에게도 조차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 이래서 구이 맛이 차원이 다르구나’ 하면서 다른 요리인 조개구이, 이면수구이, 오징어구이를 서둘러서 주문했다. 하나라도 더 먹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았다. 오징어구이를 손질하는 모습에서도 감동받았다. 정성스럽게 구운 후 먹기 좋게 잘라서 가지런히 접시에 놓았다. 이동하면 아주 작은 잔재까지 깨끗하게 씻고 손님에게 나가는 모습이었다. 구이 기술 장인이기도 했지만, 손님을 위한 마지막 처리까지 깔끔하게 하는 모습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지긋한 일본인 손님은 할머니에게 선물을 건넸다. 단골로 보이는데 주인 할머니와 인연이 각별해 보였다. 잊을 수 없는 저녁, 인생의 행복을 듬뿍 받았다.

구시로 습원을 지나가는 증기기관차의 검은 연기 – 구시로


증기기관차를 검은 연기로만 만나다
구시로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여행은 증기기관 열차를 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예매를 아무리 시도해도 안 되었다. 일본 도착하자마자 예매를 시도했으나, 아뿔싸 이미 예약이 완료되었다. 올해 첫 운행 날이자 토요일이니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긴 했다. 할 수 없이 일반 열차를 타고 구시로 습원을 가기 위해 구시로시츠겐역에서 내렸다. 캐리어를 가지고 가야 했기에 역에 도착하면 보관함에 맡기려고 했는데 역이 작아도 너무 작다. 다른 대안이 없어서 두 캐리어를 의자에 올려놓았다. 아내는 ‘혹시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눈이 내린 산등성이를 올라서 전망대까지 가야 했기에 방법이 없었다.
드디어 구시로 습원에 도착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람사르 협약’에 일본 제1호로 등재된 일본 최대의 습원이었다. 전망대에 올라서 서부 습원을 감상했다. 설산은 화산활동으로 폭발된 흔적이 남아 있었고, 굽이쳐 흐르는 강물, 습지 식물은 초록이 아닌 갈색이었다. 갑자기 증기기관차 소리와 함께 뿌옇게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아 지금이 증기기관차가 이 역을 지나가는 시간이구나’ 타지 못한 아쉬움을 지나가는 열차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는데 이미 늦었다. 전망대에서 증기기관차가 뿜어내는 까만 연기와 연한 연기만이 보였기에 사진에 담았다. 남들이 보면 습원에 화재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아니다. 아마 이런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사진이 희소성이 있겠구나’라는 위안을 가져봤다.

불안감이 극도에 달했던 조그만 구시로시츠겐역 – 구시로


얼어 죽을 뻔했던 구시로 습원
어둑해지기 시작하자 역으로 가는 좁은 길을 걷는 순간, 저 멀리서 한 일본인이 “No”라고 외쳤다. “No train”이라 다시 말했다.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소리친 것이다. ‘뭐야 우리가 타고 갈 열차가 없어’ 불안해지기 시작한 아내는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의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바쁜 걸음으로 조그만 역대합실로 향했다. 먼저 첫 번째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 캐리어가 그대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합실 안에는 유일한 한 명의 일본인이 있었다. 나를 재촉했다. “혹시 어디로 가세요?”라고 물었다. 다행히 아바시리에 간다고 했다. 아내는 두 번째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한 시간 넘게 추운 곳에서 기다리는데 계속 불안해했다. ‘이 역에 내릴 때는 10명이 내렸는데 왜 1명만 있는 걸까? 혹시 기차가 없다는 것이 사실 아닐까? 저 사람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걱정은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불안한 기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구시로역에서도 확인하고 왔음에도 나도 약간 불안감이 밀려왔다. ‘혹시나 안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아내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조그만 대합실에서 계속 뛰었다. 어느덧 예정된 기차는 몇 분 후면 이 역에 도착해야 한다. 추웠지만 나갔다. 처음 도착할 때 조그만 역이 운치가 있었다. 녹색 불빛이 비치는 역이 아내에게는 공포 영화의 배경이라고 여겨지며 머릿속이 온통 걱정투성이였다. “저 멀리서 불빛이 보인다”라고 내가 아내에게 외쳤다. 아내는 그래도 의심했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을 태세였다. 마침내 한 량 열차가 보이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차를 탔다. 세 번째 안도의 한숨이었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최고의 4가지 게 맛 도시락 에키벤 - 구시로


열차 도시락의 끝판왕_구시로 에키벤
잠시 안정을 찾았더니 배에서 반응이 왔다. 우리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일본 열차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인 에키벤이다. 에키벤은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이다. 그중에서 최고는 구시로역에서 구매한 '4가지 종류 게 도시락'! 맥주와 곁들인 맛은 물어보나 마나 최고다.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 호주 작가인 앤드류 매튜스가 한 말이다. 여행은 설렘도 있지만 때론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구시로에서 세 번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서 즐거운 여행으로 다시 돌아온 아내를 마주하고 미소가 절로 나왔다. 황홀한 하코다테야마 야경에 취하고, 장인 할머니 구이요리, 가이세키 요리 그리고 에키벤을 먹으며 음식 맛에 빠졌다. 료칸에서 온천욕을 하고 일본의 문화를 체험했다.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 힐링 부부 여행이라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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