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타파] ‘감형의 기술’로 전락한 ‘형사공탁특례제도’ 가해자를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인가?

선고 직전 ‘기습공탁’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사람들, 그 억울함은 오직 ‘피해자의 몫’

편집부 승인 2024.01.10 11:02 | 최종 수정 2024.04.22 15:07 의견 0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취재를 통해 속 시원하게 해결책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는 요즘 논란이 일고 있는 ‘형사공탁특레제도’와 ‘기습공탁’에 대해 들여다보고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는 다소 불합리에 보이는 해당 제도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 공탁과 관련한 기본적인 이해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상황 대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사의창 2024년 1월호=정용일 기자]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분명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경험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차량 급발진을 꼽을 수 있다. 본지에서도 지난 ‘궁금타파’ 취재를 통해 관련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지만 기계적으로는 해당 사고 차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보면서 당장 내가 처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언제라도 내게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국민들은 관련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공분과 분위기에 조금이라도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또 하나의 논쟁거리가 있으니 바로 ‘형사 공탁금’, ‘기습공탁’에 관한 내용이다. 그럼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공탁제도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도록 한다.
형사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해당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하고 담당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검사가 해당 사안을 재판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기소가 이뤄지고 피의자는 ‘피고인’의 신분으로서 법정에 서게 된다.
형사사건 발생 후 재판이 진행되기까지 일련의 절차를 거치면서 무죄가 아닌 이상 피의자 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형이다. 이러한 감형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반성의 모습과 더불어 본인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입장 소명도 충분히 해 내야 하며, 다시는 재범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와의 원활한 합의다.
피고인의 감형 요소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피해자와의 합의 부분이기 때문에 피고인의 입장에서 이번 취재의 주제인 공탁금은 아마도 최고의 수단으로써 활용되고 있을 것이다.
피고인이 법원 공탁소에 맡긴 공탁금은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합의의사와 상관없이 피고인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취지로서 판사에게 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공탁 제도가 무조건적으로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의 판례를 보더라도 피의자에게 매우 유리한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탁특례제도가 금전적인 보상보다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합의 안 해주면 공탁하면 되지”…남발되는 형사공탁
선고 직전 ‘기습공탁’의 그 기술에 피해자 ‘두 번 운다’
피해자들의 대응력을 무너뜨리고 유린하는 ‘기습공탁’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가해자 감형의 도구로 전락하나...
일각에선 “기습공탁 자체가 법적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형사공탁특례제도’ 보완하는 두 건의 법률 개정안 발의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지만 판사가 용서를...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피고인 측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자 함이 당연하고, 피해자 측은 대체적으로 ‘합의는 절대 없다’는 입장에서 피고인의 연락조차 일절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의 절대적인 권한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나 강력범죄 중에서도 매우 민감한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 측이 가해자 측 소식 자체를 듣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기는 더욱 어렵다.
이때 피고인이 가장 최선책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소가 이뤄진 뒤 형사공탁을 진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바로 이 공탁제도가 피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의 노력으로 평가되어 감형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탁제도에 대한 피해자들의 불만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피고인과 피해자 간의 합의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제도의 그 본질이 흐려지는 것은 분명 논란의 소지가 될 만한 상황이다.
형사사건부터 기소가 된 후 재판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다시 한번 알기 쉽게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한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특수상해를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A씨는 피의자 신분이 되고 B씨는 피해자가 된다. 특수상해죄의 경우 법정형이 최소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이기 때문에 A씨의 입장에선 처벌 형량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자와의 합의를 하려고 할 것이다.
피의자 A씨는 경찰과 검찰 단계를 거치면서 피해자인 B씨를 상대로 합의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공탁의 경우 기소 이후에 가능하기 때문에 공탁 전 단계인 상황에서 B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지속적인 합의 의사를 전하게 된다.
다행히도 피해자 B씨가 사과를 받아준다면 합의가 원만히 이뤄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기소가 이뤄지고 피의자 A씨의 신분은 피고인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형사공탁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A씨는 B씨의 상해 정도를 파악한 뒤 병원비와 위자료 등의 명목으로 총 1천만 원을 공탁소에 맡겼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형사공탁이 이뤄지면 해당 사실이 피해자 B씨에게 전달되며 공탁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만약 B씨가 검찰이나 법원을 통해 본인 확인 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공탁소에 찾아가 ‘출금 청구서’를 작성하면 해당 공탁금을 출금해갈 수 있다.
판사의 입장에서 이는 곧 피고인 A씨가 피해자에게 피해 일부를 회복시켜 주었다고 판단하게 되며, A씨는 재판 과정에서 감형받을 확률이 매우 높아지며 그 감형 수준도 상당하다. 이 때문에 가해자 측의 입장에서 합의 또는 공탁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중요하다.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가지 않았으니, 피고인의 형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여러 번 말했지만 피고인 A씨가 공탁금을 건 것만으로도 재판에서 어느 정도 감형이 이뤄지는 것이다. 또한 그 공탁금의 액수가 상당하다면 감형에 더욱 유리한 요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단 공탁이 이뤄지고 그 금액이 합리적인 수준이라 판단된다면 피해자 B 씨가 공탁금을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공탁금을 계속 찾아가지 않을 경우 피고인이 이를 다시 회수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피의자 A씨는 3억 5천만원을 공탁했으며 회수제한신고란에 서명함으로써 재판부의 판결에 감형요소로 작용했다.


한 가지 실제 사례를 보면 살해 혐의를 받던 한 피고인이 법원에 형사공탁을 한 후 4년을 감형받았다. 그 이후 피고인의 공탁금 회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피고인의 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피고인이 형을 감형받음으로 인해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무런 피해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경우 피해자 측이 피고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어 합의금에 준하는 금액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민사소송 과정이 생각보다 길고 또 상황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가정한다면 이 과정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피해자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장기간 받을 스트레스 등 매우 난감한 입장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그저 그 억울함과 답답함은 피해자의 몫일 뿐이다.
하지만 본지에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사례의 경우는 극히 드문 상황이다. 이유인 즉 형사공탁의 경우 신청서에 ‘회수제한신고’란에 표기를 하면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공탁금에 대한 회수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무죄가 아닌 이상 피고인이 회수권한을 갖고 있는 그 권한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으로써 이는 재판부에서 감형 요소로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반대로 회수제한신고란에 서명을 하지 않을 경우 당연히 피고인은 본인이 공탁한 금액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공탁금은 감형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의 거의 없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사례의 경우 피고인이 4년 감형을 받은 후 공탁금을 다시 회수했다는 것은 피고인이 금전 공탁서 작성 시 회수제한신고란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는 당시의 공탁금은 감형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당시의 감형은 다른 이유로 인해 감형을 받았거나 극히 드문 일이지만 판사의 실수로 인해 내려진 판결일 것이다. 판사의 실수라 함은 당시의 공탁금에 대한 금전 공탁서의 회수제한신고란을 확인하지 않고 그저 공탁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형사유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란 것이다.

정작 현실은 가해자들의 양형을 위한 좋은 수단?
지난해 12월 시행된 ‘형사공탁특례제도’는 공탁을 위해 피해자를 뒷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등의 또 다른 위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으며,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일정 금액을 법원에 맡길 수 있게 했다. 사건이 진행 증인 법원과 사건번호만 알면 공탁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 2022년 12월 형사공탁특례제도가 시행되었다.


제도의 시행 전까지는 피고인이 공탁을 하려면 피해자의 성명, 주소, 주민번호 등 민감한 인적사항을 반드시 알아야만 가능했으며,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거나 피해자가 공탁을 위한 인적사항 제공을 거부하면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공탁은 불가능했다. 또한 피해자 몰래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이뤄진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제도가 시행된 지 고작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생기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 이 형사공탁특례제도의 이해를 위해 더 깊게 한 번 파보도록 하자.
해당 제도는 피고인이 공탁을 위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2차 피해를 막고, 동시에 공탁금으로 피해자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 회복을 도모함을 그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형사공탁특례제도다. 제도 시행의 그 취지를 들여다보면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처럼 보이지만 정작 현실은 가해자들의 양형을 위한 좋은 수단으로 이용되며,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자가 공탁에 대한 거절 의사를 밝힐 시간적 여유를 빼앗는 이른바 ‘꼼수공탁’은 변론 종결 후 선고 직전 이뤄지며,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탁과 기습공탁은 진정 피고인의 전유물이 된 것일까.
실제로 최근의 사건을 살펴보면 ‘강남 스쿨존 사망 사고’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9살 초등학생이 당시 음주 상태로 차량을 몰던 가해자의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공탁을 통해 감형을 받았다. 피해자는 공탁을 통해 감형받는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엄벌탄원서를 재판부에 수차례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가해자는 결국 공탁이 참작되어 1년 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고, 피해자와 그 가족은 억울함에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상황보다 더 분통 터지는 사례들도 있다. 선고 하루 이틀 전 기습적으로 공탁을 하는 경우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A씨는 후진하던 차량에 치여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피해자와의 합의 의사가 없어 보이던 가해자 B씨는 선고 하루 전 기습적으로 공탁을 걸며 이로 인해 피해자 A씨는 갑작스러운 공탁 통지에 전혀 대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피고인의 공탁이 이뤄지면 공탁사실 통지가 피해자에게 등기우편으로 도착하기까지 통상적으로 7일에서 10일이란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습공탁은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가해자 A씨가 공탁한 금액은 고작 1,000여만 원에 불과했다. 피해자 A씨가 사고로 입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결국 이러한 기습공탁은 피고인 측의 고도의 전략에 따른 승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두고 피고인의 전략적 승리로만 해석하기에는 법적인 문제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형사공탁특례제도가 시행된 후 지난 1년 동안 약 천억원이 넘는 금액이 공탁됐지만 실제 피해자들이 수령해 간 금액은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공탁이 이뤄진 사건들 중 양형 사유가 된 경우는 80%를 웃돌며, 10명 중 8명이 공탁금을 내고 감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중 성범죄 사건의 경우 공탁 건의 75%가 감경사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공탁제도는 피고인의 입장에선 정말 좋은 제도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제도의 중심에 있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좋은 취지만큼 좋은 제도로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수가 고개를 절래 흔든다.
피해자 본인이 피고인을 용서할 수 없고, 공탁금도 받지 않겠다는데 무슨 자격으로 법원이 공탁을 이유로 피의자에게 감형을 해주냐는 것이 대체적인 피해자들의 의견이다. 피해자와의 합의 의사를 공탁이라는 제도를 통해 법원에 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감형 사유가 된다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현실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공탁금으로 감형을 받으려는 피고인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형을 받게 되면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충격은 실질적인 2차 가해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한 명백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면서 전혀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피해자를 기만하듯 기습공탁을 통해 감형받는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가 느낄 분노와 고통, 모멸감은 상당할 것이며, 이렇게 ‘용서의 권리’마저 빼앗긴 피해자들은 “법원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금전 공탁서 좌측 하단부의 회수제한신고란에 서명을 할 경우 공탁소에 맡긴 공탁금은 회수가 불가능해진다.


법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공탁)조차 무시할 수 없어”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받은 이후 가해자로부터 금전적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손해배상청구 또는 형사배상청구를 별도로 해야 한다. 하지만 형사공탁특례제도를 통해 그러한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고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뉘우치면서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제도의 그 본래 취지와는 다른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제도 시행 후 예상과는 달리 피해자들의 동의 없는 공탁의 실익은 크지 않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판 과정에서 합의금을 받을 수도 있고, 합의를 원치 않는다면 피의자의 유죄 확정 뒤 민사소송을 통해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어차피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공탁이라는 제도를 통해 좀 더 빨리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을 뿐이다.
반면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유리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어차피 피해자에게 줘야 할 돈을 조금 더 빨리 주는 공탁 제도를 통해 감형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탁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형사공탁과 관련한 실제 판결문이다.

“사기죄와 같은 일반 재산범죄에서 부득이 피해자의 연락처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 피해자를 위하여 상당한 금액을 공탁하면 이를 양형에서 유리하게 고려할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하나, 이 사건과 같은 성범죄에서 피해자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할 경우 형사공탁을 하면 이를 과연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 것인지, 한다면 얼마나 반영할 것인지 고민이다. 다만 상당한 형사공탁이 이루어진 경우를 아무런 사정 변경이 없는 경우와 같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피고인으로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조차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사정을 피고인에게 미약하나마 유리한 양형 요소로 추가하여 이 사건을 살핀다.”
-서울중앙지법, 2022노000 판결문

폭력, 살인 및 성범죄 등 비재산범죄 양형기준에는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이 감경 요인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상당한 피해 회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별도의 정의 규정은 없다. 결국 피의자가 피해자에 대한 상당한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의 진정성을 판가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판사의 재량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양형위는 이걸 법관의 '양형 재량권'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법관의 ‘양형 재량권’을 두고 왈가불가할 사항은 아니다. 다만, 판사의 양형 재량권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형사공탁이 양형의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피해자 및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겪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여전한데, 피해자는 피고인의 공탁을 완강히 거절하며 엄벌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공탁을 매번 ‘상당한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현재 이 같은 비판을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잘 알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11월 8일 KBS의 질의 답변 내용을 보면 양형위는 “공탁과 관련된 감경인자가 일선 재판에서 너무 쉽게 적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고, 그러한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양형위원회는 향후 전문위원단의 연구·검토를 거쳐 공탁과 관련된 양형인자에 대한 추가 정비 방안을 심의하고, 이를 양형기준에 반영할 예정입니다.”고 밝힌 바 있다.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는 공탁 후 4년을 감형받았다. 사진은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는 82세 노모의 탄원서


형사공탁특례제도를 보완하는 두 건의 법안이 발의
법조계는 법원이 공탁 여부를 양형의 중대한 요인으로 삼기 때문에 지금처럼 일방적 공탁은 앞으로도 늘면 늘었지 줄어들 순 없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변호사들 역시 피고인들에게 공탁부터 하자는 식의 조언을 하는 분위기가 엿보이기도 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단 현재 공탁금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비치고 또 실제로 지금까지의 판결을 분석해 봐도 양형에 반영이 안 되는 것보다 영향을 미쳤다고 보이는 사건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검찰 내부에서도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형사공탁 특례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시사의창은 해당 사안과 관련해 보다 명쾌한 답변을 듣기 위해 법률사무소 ‘가치’의 김명철 변호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 보았다. 우선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형사공탁과 관련해 김명철 변호사는 “법원은 실제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됐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공탁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판사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합의서의 경우 금액 기재를 하지 않은 형사 합의서, 특히 금전적인 사건 같은 경우 법원이 실제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갚은(송금한) 금액은 얼마인지 등 요즘은 법원에서 자료를 더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합의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피해변제를 얼마나 했느냐를 따지는 게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형사공탁이 재판부의 피의자에 대한 양형자료로써의 판단 기준의 중요 자료로 활용되는 것은 확실히 맞다.”고 말하면서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피해자에게 알리는 등 피해변제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입장일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와의 합의 또는 피해변제를 위한 한 방법으로 공탁제도가 이용되고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법원이)회수제한 신고유무’를 중요 사항으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가치-김명철 변호사


법률사무소 가치-김명철 변호사 Q&A
Q.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것은 바로 선고 직전 기습적인 공탁일 것이다. 분명 피해자의 입장에선 기습 공탁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이러한 상황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A.
미국의 경우 양형자료와 관련해서 공판절차 안에서 양형자료를 심사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운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지금의 형사소송법에서 양형자료 제출에 대해서는 제한 없이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피고인이든 피해자든 재판 직전에 판사에게 사실과 다른 내용의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 자료제출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다 보니 판결 직전 받은 자료가 판결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형사공탁과 관련한 잡음도 생기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형사절차는 피고인의 절차다. 피해자의 경우 형사절차에서 법원이 챙겨야 할 당사자는 아니다. 때문에 선고 직전 기습공탁이라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형사절차의 과정에서 피의자의 합법적인 권리지만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선 만큼 아마도 제도 개선의 여지도 있는 것으로 안다.

Q. 변호사님의 경우 지금까지 다수의 피고인과 피해자 양측 모두를 변호했을 텐데요, 피의자의 변호를 하는 입장과 피해자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형사공탁에 대한 시각은 어떤지
A.
피고인의 경우 공탁을 늦게 하는 저마다의 다양한 사유가 있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피해자와의 접촉을 시도하며 선고 직전까지 피해변제를 위한 노력을 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뒤늦게 공탁을 하는 경우들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그저 감형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선고 직전의 기습공탁에 대한 논란에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무턱대고 피고인이 늦게 공탁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형사공탁특례제도에 대한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안이기에 단기간에 그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국회에서 형사공탁특례제도를 보완하는 두 건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 개정안을 들여다보면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피공탁자인 피해자가 법원으로부터 형사공탁 사실을 직접 통지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탁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또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변론종결 14일 전까지만 형사공탁을 할 수 있게 하며, 공탁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가 공탁회수동의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변론이 종결된 이후 공탁이 이뤄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기한을 두는 등 피해자가 형사공탁에 대한 이의 의견을 제출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써 법원이 피해자의 의사를 파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형사공탁제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앞으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를 바랄 뿐이다.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탁은 명백한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범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풀어가는 그 과정을 생략한 채 형 감량의 도구로써 이뤄지는 기습공탁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들의 당혹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기습공탁은 분명 피해자의 대응력을 유린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법은 피해자의 다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한다. 법이 절대 가해자에게 유리한 하나의 도구로써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싼 밥 먹고 싸움질만 일삼는 여의도 사람들은 잘못된 법을 고치고,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과 세상의 억울함을 줄이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형사공탁은 분명 위헌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의 영역이 아닐까.
입법부에서 게으름을 피운다면 사법부에서 올바로 처신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누가 보더라도 반드시 고쳐져야 할 것에 대해 방관한다면 그것은 정의의 유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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