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 이어진 공습에 악몽과 야뇨증도…'공습 트라우마' 시달리는 가자 아이들의 심리적 공포 어쩌나

보름간 어린 아이 1천750명 사망…살아남은 아이들도 극심한 트라우마 증세
15년간 대규모 공습만 다섯 차례…"아이들의 삶은 생지옥과 같은 상황이다"

정용일 승인 2023.10.23 10:36 의견 0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전쟁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참혹한 전쟁 속에서 양국의 국민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지만 즉각적인 대처능력인 부족할 수 있는 힘 없는 노약자나 여성들,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감과 더불어 트라우마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자지구 난민 캠프서 포옹하는 어린이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집을 잃은 가자지구 주민들이 19일(현지시간) 남부 칸 유니스의 유엔개발계획(UNDP) 난민캠프에 모인 가운데 어린이들이 포옹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기준 가자지구 내 누적 사망자 중 4분의 1가량이 어린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과정에서 보름 넘게 이스라엘 군의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이 극심한 트라우마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낳고 있다.

22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공습에서 살아남은 가자지구 어린이들이 경련, 야뇨증, 불안, 악몽, 공격적이거나 퇴행적인 행동 등 트라우마 증세를 보인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에 사는 미성년자의 수는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115만 명 정도로, 이들은 지난 7일 이후 매일 같이 대대적인 공습에 시달리고 있다.

22일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16일간의 공습으로 가자지구 어린이 1천75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매일 약 110명의 어린이 사망한 셈으로, 부상자는 수천 명을 넘어섰다. 살아남은 어린이들은 공습에 대한 공포로 어른들보다 더 큰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정신과 의사 파델 아부 힌은 가디언에 전쟁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드러나고 있다며 "안전한 공간이 부족해 가자지구 전체 주민들에게 두려움과 공포가 널리 퍼지고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몇 아이들은 그들의 불안을 겉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아이들에게도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하지만, 공포와 트라우마를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안에 억누르고 있는 아이들보다는 차라리 나은 상태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살아남은 아이들은 자신의 집을 떠나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음식이나 깨끗한 물을 거의 제공받지 못하고 있으며 밤마다 엄습하는 공습에 대한 공포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임시 거처에서 여섯 명의 아이들 함께 지내고 있는 타흐리 타바시는 아이들이 밤에 가장 많이 고통스러워한다면서 "밤새 울거나 의도치 않게 이불을 적신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아이들이 악몽과도 같은 공습을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15년간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폭격은 이번을 포함해 총 5번 벌어졌으며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짙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남겼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12년에 이스라엘 군이 하마스를 상대로 벌인 '방어 기둥 작전' 이후 가자지구 어린이 82%가 임박한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어린이 91%가 무력 분쟁 중에 수면 장애를 호소했으며 85%는 식욕의 변화를, 82%는 분노 증세를 보였으며 97%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보다 앞선 2008~2009년에 3주간 이어졌던 이스라엘 군의 '캐스트 리드 작전' 이후에도 6세 이상의 어린이 75%가 하나 이상의 PTSD 증상을 겪고 있다고 의료단체 가자정신보건프로그램(GCMHP)이 발표하기도 했다.

공습 피해 맨발로 대피하는 팔레스타인 부녀자들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들이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맨발 상태로 긴급 대피하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GCMHP의 정신과 의사 하산 제야다는 가디언에 "우리는 아이들이 더 불안해 하거나 수면 장애, 악몽, 부모에게 매달리는 등의 퇴행적인 행동을 보이는 걸 목격했으며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며 활동 과잉이 되거나 공포와 두려움에 짓눌려 혼자 잠들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자기를 원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또 몇몇은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별다른 이유 없이 고열이나 온몸에 피부 발진이 나는 등 심리적 병증이 신체적 증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가자지구 봉쇄가 15년째 이어지고 무력 충돌도 끊이질 않으면서 이곳 아이들의 심리·사회적 건강은 매우 위험한 수준으로 나빠지고 있다.

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가자지구 봉쇄와 무력 분쟁이 아이들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히며 인터뷰 대상이었던 아이들이 "두려움, 긴장, 불안, 스트레스, 분노에 대해 말했으며 가정불화, 폭력, 죽음, 악몽, 가난, 전쟁과 점령, 봉쇄 등을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좋아하지 않는 것들로 꼽았다"고 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어린이들의 삶을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7일 하마스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의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트라우마 증세가 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스라엘 소아과 협회 회장 자치 그로스만은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에 "소아과 병원을 찾는 아이들의 90%가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며 "이번 사태가 이전보다 더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이 덮쳐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용일기자 citypress@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저작권자 ⓒ 시사의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