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으로써 한덕수 총리가 이번 결과로 인해 총리직을 상실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안이 21일 가결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한 총리 해임건의안을 찬성 175명, 반대 116명, 기권 4명으로 통과시켰다. 해임건의안은 재적의원 과반 찬성이 가결 요건이다. 표결은 무기명 전자투표로 이뤄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 속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진 결과로 받아들여지며 이미 충분히 예상된 결과였다.

앞서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및 잼버리 파행 논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관련 논란 등의 책임을 물어 한 총리 해임건의안을 지난 18일 국회에 제출했다.

과거 정일권·황인성·이영덕 총리 해임건의안은 부결됐고, 김종필·이한동·김황식 총리 해임건의안은 기한(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아 폐기됐다. 이로써 이번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국회의 해임건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1987년 개헌을 통해 법적 구속력이 사라지고, '건의권' 형태가 됐다. 그저 총리의 해임건의안 가결이란 상징적인 의미일 뿐, 그 결과를 두고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으며, 대한민국 역사의 기록에 남게 됐다.

윤 대통령은 앞서 국회를 통과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무위원 해임건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해임건의안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능성이 절대적이다.

윤 대통령은 모두 대통령실 전언 형태로 거부 의사를 밝혔고, 두 장관은 직을 유지하고 있다. 한 총리 해임 건의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비슷한 형태로 대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투표를 하고 있다.

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의 해임 건의 제도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이례적인 제도이다.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행정부 구성을 견제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으로, 해임 건의 사유는 직무집행상 위법행위는 물론 정치적 무능, 정책결정상 과오가 있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역대 첫 번째, 두 번째 총리 해임건의안은 박정희 정부 당시 정일권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1964년 9월 3일, 1966년 6월 27일)이었다. 당시 야당은 정 전 총리가 취임 후 "사회적 안정을 이룩하지 못하고 정치·경제적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 등의 이유로 두 차례 해임건의안을 발의했지만, 각각 기한 만료로 폐기되거나 표결 후 부결됐다.

김영삼 정부에서도 황인성(1993년 5월 17일), 이영덕(1994년 10월 27일)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제출돼 본회의에 상정됐고 표결에 부쳐졌으나 역시나 예상대로 부결됐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김종필 총리 해임건의안(1999년 8월 10일, 1999년 8월 16일) 두 건, 이한동 총리 해임건의안(2001년 4월 25일) 한 건이 각각 발의됐으나, 당시 여당 의원들의 집단 퇴장 및 기권표 행사와 이에 따른 야당의 개표 거부 등의 사태로 표결이 성사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최근 사례는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2012년 7월 17일)이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처리 파문 등의 책임을 물어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이 표결 시작과 함께 퇴장하면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성립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윤석열 정부 내각에 대해서는 세 번째 해임건의안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책임을 묻겠다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같은 해 9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 순방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논란을 이유로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각각 발의, 단독 처리한 바 있다.

해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야당이 국회에 산적해 있는 일거리들을 뒤로하고 굳이 소중한 시간들을 할애해 이러한 싸움에서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일까.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을 볼모로 정파 싸움을 위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민생 현안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국민들은 원한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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