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방심, 오만, 착각의 말로는··· 지구가 흔들리고, 불에 타고, 물에 잠기고 "이러다 정말 다 죽는다"

120년만의 강진, 140년만의 폭우... "남의 일 아니다"
모로코 사망자 3천여 명, 리비아 사망자 최대 2만여 명

정용일 승인 2023.09.16 09:24 | 최종 수정 2023.09.16 22:25 의견 0

기후변화에 재해 중 가장 큰 피해는 홍수-가뭄-태풍
비교적 기후변화 영향 덜 받던 지진도 이젠 예외 아냐
기후 변화로 앞으로 더욱 심한 홍수 발생 가능성 커져
재해의 경우 생존자가 질병 퍼뜨릴 가능성 더욱 높아
물 속 시신에서 배설물 유출될 수도, 식수 오염 피해야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그동안 비교적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식되어온 모로코에서 얼마 전 발생한 규모 6.8의 지진으로 인해 수천명의 사망자가 나온지 얼마 지나지않아 주변국인 리비아에서 또 다시 대홍수로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렇듯 대홍수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본 리비아가 시신이 유발할 수 있는 위험 등을 우려해 피해 도시를 사실상 봉쇄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홍수로 폐허가 된 리비아 데르나


보도에 따르면 리비아 당국은 열대성 폭풍으로 댐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홍수로 최소 1만 명이 숨진 동북부 항구도시 데르나 대부분 지역의 민간인 출입을 금지했다. 이는 도시 곳곳에 방치된 시신이나 고인 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고 긴급 구조 요원들에게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다.

이제 데르나 대부분 지역에는 수색 구조팀만 진입할 수 있다고 현지 응급 서비스 국장 살렘 알 페르자니는 밝혔다. 이미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데르나를 떠났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데르나 봉쇄 계획은 대홍수로 지금까지 최소 1만1천300명이 숨지고 추가로 1만100명이 실종됐다는 리비아 적신월사 발표가 나온 가운데 전해졌다.

압둘메남 알가이티 데르나 시장은 13일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사망자 수가 1만8천명에서 최대 2만 명이 될 수 있다고도 추산했다.

데르나에서 수색·구호 작업 나선 인도주의단체

성급한 판단으로 시신 화장하거나 즉시 매장 경계해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소속 아프리카 지역 법의학 책임자 빌랄 사블루는 "시신이 길거리에 널려 있고 해안으로 밀려오고 있으며 무너진 건물과 잔해에 파묻혀 있다"면서 "2시간 전 한 동료는 데르나 인근 해변에서 200구 넘는 시신을 화장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ICRC는 앞서 재난 현장에서 나온 시신을 존엄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신으로 인해 전염병이 돌 수 있다는 성급한 판단 때문에 신원 확인을 거치지 않고 화장하거나 즉시 매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기구는 "지역 당국은 사망자를 빨리 매장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지만, 사망자를 잘못 관리하면 유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ICRC 법의학 부서 책임자 피에르 기요마흐는 "자연재해와 같은 상황에서 시신보다 생존자가 질병을 퍼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식수원 근처에 시신이 방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이들 기구는 부연했다. 물속에 있는 시신에서 배설물이 유출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식수가 오염돼 질병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모로코 강진 피해 현장

이러한 상황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리비아와 강진 피해를 겪은 모로코 등지에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재난 현장에서 나온 시신을 존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내용인즉, 시신으로 인해 전염병이 돌 수 있다는 성급한 판단 때문에 신원 확인이 안 된 채 화장하거나 즉시 매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WHO와 ICRC는 15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통해 "막대한 사망자가 나온 재난·분쟁 지역에서 근거 없는 오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신이 생존자들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두 기관은 "전염병으로 사망했거나 풍토병이 유행하는 지역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외상이나 익사, 화재로 사망한 사람에게는 질병을 일으키는 유기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시신이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믿음은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으며 자연재해 지역에서 시신보다 생존자들이 질병을 퍼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언급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식수원 근처에 시신이 방치돼 있으면 안 된다"면서 "물 속에 있는 시신에서는 배설물이 누출될 수 있고 식수를 오염시켜 질병 위험을 초래할 수는 있다"고 부연했다.

두 기관은 "비극에 휩싸인 지역사회가 대량 매장이나 대량 화장을 서두르지 말 것을 촉구한다"면서 "고인의 신원을 확인한 뒤 유족에게 애도할 시간을 주면서 고인에게는 품위 있는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기관은 리비아 홍수 피해 현장과 모로코 강진 피해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사망자 수습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정확한 발견 위치와 유류품 내역 등 수습된 시신에 관한 정보를 매뉴얼에 따라 기록하고 안전하게 전용 가방에 넣어 시신을 보관·운송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이날 ICRC는 시신 보관용 가방 5천개를 리비아로 추가 배송하기도 했다.

전날 리비아 적신월사 발표를 기준으로 리비아에서 지난 10일 발생한 홍수 사망자는 1만1천300여명에 이른다. 모로코에서 지난 8일 일어난 강진 탓에 숨진 희생자는 2천946명에 달하며, 사망자 수가 최대 2만명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수많은 인명을 바다까지 쓸고간 리비아 대홍수


이같은 상황은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후 변화로 더 심한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리비아 홍수가 도시의 기반 시설이 기후, 지리와 만나 홍수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이며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홍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열대성 폭풍이 몰고 온 많은 비와 강한 바람으로 데르나 외곽에 있는 댐 2곳이 붕괴하면서 도시의 20% 이상이 물살에 휩쓸리는 등 피해가 커졌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사진을 보면 홍수가 나기 전인 지난 7일과 달리 지난 13일에는 저지대에 물이 차고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포착된다.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의 캐서린 마치 환경과학·정책 교수는 "홍수는 재산 파괴와 인명 피해 정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자연재해"라면서 그 위험과 파괴의 정도는 다양할 수 있으며 특정한 지역이 홍수의 영향을 받는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전체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이라고 설명했다.

리비아는 매우 건조한 기후로, 폭우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리비아 국립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일 하루에만 데르나 지역에 강수량 400㎜의 기록적인 비가 쏟아졌다. 평년의 데르나 9월 강수량은 한 달간 1.5㎜에 불과하다. 리비아와 같이 건조한 지역에서는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지표면에 머무르고 이는 물이 빠르게 흐르는 갑작스러운 홍수를 일으킨다.

데르나의 경우 강과 개울을 따라 흘러내린 퇴적물이 산기슭에 쌓여 형성된 충적 선상지(하천이 산지에서 평야로 나오는 지점에 생기는 퇴적 지형)위에 세워졌다.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 어바인)의 브렛 샌더스 환경 공학 교수는 이러한 지형이 홍수의 위험에 크게 노출돼있다며 충적 선상지에 폭우가 내리면 홍수가 갑자기 발생하고 매우 빠르게 이동하며, 많은 퇴적물과 잔해를 운반하면서 모든 것을 밀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엘니뇨 현상을 나타내는 SOS시스템·


마치 교수는 자연 외에도 도시 건축 환경이 홍수 피해의 정도를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역사적으로 도시들은 물 근처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은 홍수가 나기 쉬운 곳에 기반 시설과 집, 산업 센터, 상업 지구 등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도시에는 홍수 조절과 상수도 시설이 구축돼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설이 때로는 무심코 홍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홍수 조절 시설이 있는 경우 사람들은 종종 이 지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다른 건축물을 짓는데, 시설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할 경우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교수는 "홍수 조절 시설을 건설하는 것과 이를 관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정부가 일반적으로 시설을 처음 건설하는 것보다 이후에 관리할 정치적 동기가 더 적다고 지적했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갈수록 더 많은 폭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앞으로 홍수는 더 위험하고 큰 피해를 가져올 전망이다.

마치 교수는 기후 변화 때문에 "비가 더 극심하게 올 상황에 분명하게 처해있다"고 우려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리비아를 강타한 것과 같은 지중해 폭풍이 앞으로는 덜 빈번할 수는 있지만 발생한다면 더 강하고 더 극단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모로코의 120년만의 강진, 리비아의 경험해본 적 없는 대홍수와 더불어 중국에선 14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중국 현지인들은 이를 두고 1천 년 만의 폭우라고들 말한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의 이번 비극은 기후 변화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와 당장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구가 매우 위험한 상태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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