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여성 독자들이 《방한림전》을 통해 여성과 여성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았다면, 현대의 독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성적인 열정 없이도 서로에게 애정과 그리움을 품고 상냥함과 헌신, 존중과 예의로 서로를 대하며, 입양한 아이를 함께 돌보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공동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국가의 인구를 늘리고 가문의 대를 이을 자식을 생산하는 재생산이 아니라, 남성을 가부장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혼인이 아니라, 가부장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우정으로 맺어지고 행복과 책임감을 기반으로 하는 평등한 공동체를 꾸린다는, 당연한 권리로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직 생활동반자법도 통과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취약한 그 관계를, 조선시대의 소설 《방한림전》은 이미 앞질러 꿈꾸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전혜진 지음 ㅣ 한겨레출판 출판
[시사의창=편집부] ‘페미니즘 리부트’로 명명되는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붐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여성서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런 흐름을 타고 나온〈스트릿 우먼 파이터〉〈술꾼 도시 여자들〉〈닥터 차정숙〉 등은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당당한 ‘언니들’은 현대물에만 있을까? 우리의 전통에서 이런 ‘언니들’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장르문학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가려진 여성의 삶에 주목해 온 전혜진 작가는, 이 책에서 낡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 우리 신화와 고전 속 여성 영웅들을 재조명한다.
태초의 여성 신화 〈바리데기〉부터 ‘정상가족’에 도전한 《방한림전》까지, 다양한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들은 때론 시대의제약을 뛰어넘어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때론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간다. 이렇듯 멋진 ‘언니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은 다양한 여성서사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낯익고도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