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컬럼> 권문용 전 구청장 지난 8월 31일 타계, 강남의 큰 별 지다.

-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3선으로 지방행정에 큰 족적 남겨...
- 자유주의 공직자로서 저돌적 사업 벌여 강남센세이션 일으켜....
- 각계의 인사들, 빈소방문 그의 영면을 아쉬워 해...

강현섭 승인 2023.09.04 16:08 | 최종 수정 2023.09.05 15:22 의견 0

[시사의창=강현섭 기자] 강남구청장을 역임했던 권문용씨가 향년 80세로 지난 8월 31일 타계했다. 권 문용 전 구청장의 빈소에는 강남구 지역구출신의 국회의원은 물론 정재계 인사 및 이재창 전 의장 등 구의원들과 그를 따랐던 전 현직 행정 관료들이 조문했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가족과 지인들의 입회하에 평소 그를 따르던 손길에 의해 은은한 관현악이 흐르는 장레순서에 따라 경기도 용인의 로뎀파크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지난 2일 권문용 전 구청장에 대한 발인식후 유족들이 현대 아산병원 영안실을 나서 용인시 장지로 행하고 있다.

권문용 전 강남구청장이 보내 온 별리(別離)의 고(告)는 그동안 그를 애정으로 지켜보며 강남을 지켜 온 수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가 강남구청장으로서의 직을 수행하면서 행한 여러 업적들은 한 순간의 아쉬움으로만 남기기엔 더 큰 아쉬움이 되고 그가 가진 지방정치에 대한 철학과 강남의 지방행정 사례는 살아 움직여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계속 전파되어야 하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그가 행한 주요 정책적 과제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 권청장, 당선되자 마자 양재천 개발사업 시행

그는1991년 4월 17일 강남구청장직에 당선되자마자 먼저 양재천 개발사업을 과감히 펼쳐 시민들에게 공원을 선사했다.

당시 양재천은 폐가전 제품이나 싱크대, 폐타이어 등 쓰레기가 버려지고 벌레나 거미줄과 칡넝쿨로 뒤범벅이 되어 있던 곳이다. 이런 양재천을 공원화하는 일에 그는 팔을 걷고 앞장서 양재천 수변지역을 정비하고 자전거길을 설치하였으며 곳곳에 징검다리를 설치하였으며 나무와 수생식물을 적절히 조화시켜 수질을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특히 사람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빠알간 탄성 보행길을 설치하며 수질 정화시설을 도곡동 강남분기점에 설치하여 맑은 물을 내려 보냄으로서 각종 물고기가 꼬여들어이를 먹으려는 조류가 날아드는 생태형 하천으로 복구했다.

이와 같은 업적은 초기 용인자연농원 공원과장을 불러 자문을 구하고 외국의 여러 명소를 자신이 직접 시찰하고 공무원들을 해외 등에 파견함으로서 동력을 더해 나갔다.

당시로선 구청단위의 획기적 개발사업으로서 주변의 반대도 많았다.

관선시절 공무원들은 주로 서울특별시장의 위임 업무를 처리해 온 하위 관청으로서의 구청공무원들이 복지부동했고 정부와 서울시 또는 건설교통부의 상급 공무원들조차 ‘하천법’으로 금지되어 온 여러 시설물이 양재천에 설치된다면 재난발생시 여러 수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개발을 막았었다.

양재천 개발직전 전경
양재천 개발직후 전경


또한 자연적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화초 양귀비에 마약성이 있다는 SBS의 보도는 강남구 양재천이 마약의 온상으로 비춰지게는 부정적 인식을 가져왔는데 권 청장은 가짜뉴스라며 강력히 대처하기도 하였고 예산삭감을 통해 구의 치적을 가리려는 일부 구의회의원들의 반대와도 싸워 나갔다.

그는 1995년 민선2기 재선 공약으로 “이사가지 마세요!!”라는 구호를 통해 양재천 사업의 추진을 알렸고 그 결과 실제 양재천변의 아파트 값이 2억 이상 상승하는 경제적 혜택을 주민들에게 선사한 결과 환경부 장관의 방문은 물론 성공사례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을 뿐만 아니라 안양천과 중랑천에 이어 청계천 등 수변공간 공원들의 확산에 기여했다

.◆ 필요한 공공재의 획기적인 취득과 관리

권 구청장의 업적은 임기 중 공유재산의 확보를 통하여 시민 모두의 부(富)를 확산시켜 나갔다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조달청 창고부지였던 현 강남구청 부지를 사 들였다. 당시 매각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강남구청 청사부지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지방자치의 시행으로 비좁아 금화빌딩과 주택공사 앞 건물에 임대로 나가있던 부서들을 통합하여 현재의 청사로 끌어 모았다.

당시 청사를 새로 지었어야 했지만 1998년 IMF구제금융 시점이라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청사를 리모델링하여 현재 청사로 이전을 마쳤다.

그러나 “당시 구의회가 적극적으로 신축을 주장했고 그 후 2번에 걸쳐 증축이 이루어졌으며 아직도 일부 행정부서가 외부청사에 나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 관점에서 제대로 된 청사를 그 때 지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권 청장 최대의 치적은 청사부지를 매입한 것이고 최대의 실책은 바로 그곳에 청사를 안 지은 것이다”라는 평가도 있다.

한편 이 같은 공공재의 확보와 관련, “강남구가 돈이 많아 공유지를 사들인 것이다”라는 깎아내림에 대해 “권 청장은 행정의 능률성과 효과성을 최대로 구현하되 필요한 부지를 미리 예단하여 미리미리 공공재를 준비해 나갔다”는 점에서 후임 구청장들이 사업으로 예산을 대부분 사용했다는 점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구민들이 잘 이용하고 있는 논현동 주차장, 학동주차장, 일원동 주차장 등 부지를 사들여 공영주차장을 조성하고 압구정동 428번지를 서울시로부터 사들여 현대백화점 인근의 주차부족 문제를 완화한 것은 그가 서울시 투자분석관으로 있을 때의 전문가적인 식견을 지방행정에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아웃소싱으로만 운영할 수 없었던 주장면 관리를 위해 서울시 최초로 ‘강남도시관리공단’ 제안을 받아들여 공단을 만들고 현재의 시설관리를 현대적으로 이끌게 만들었다.

◆ 地方行政에의 과감한 IT 접목

권 청장은 기회 있을 때 마다 “세계최고. 전국최초”를 행정에 반영하였다. 그는 논현동과 역삼동 등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에 범죄율이 높은 것을 간파하고 골목길 CCTV설치 사업을 벌였다. 이를 위해 역삼동 소재 공유지를 활용해 “도시관제센터”를 건립하고 24시간 범죄를 예방하는 활동에 팔을 걷고 나섰다.

초상권 침해와 사생활 피해를 호소하는 일부 반대의견에 대하여 그는 단호히 “여러분들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권리보호 보다 아녀자들에 대한 도적과 강도로부터의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구민들의 민원에 당당히 대응했다.

대치동가에 늘어나는 학원가에 대한 견제와 방학기간에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지방인구의 강남전입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그는 “인터넷 방송국”을 설치했다. 대치동 학원가의 1타 강사를 모셔다가 인터넷을 통하여 강좌를 송출함으로서 강남에 직접 오지 않고서도 학원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는 당시 혁명적인 수준이었고 이로 인해 EBS 교육방송의 질이 강남인강과 경쟁하면서 더욱 고양될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도입되기 시작한 Internet Technology를 적극적으로 행정에 반영하고 전 직원에게 컴퓨터를 보급하기 시작했으며 이 즈음 주민등록등과 인감을 발급받을 수 있는 복합 민원기기를 곳곳에 설치하는 사업도 과감하게 채택했다. 이 같은 IT 관련 사업을 행정에 과감하게 채택하여 실험적 도입을 한 것은 타 지방자치단체의 선구가 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지방행정에 능률성 효과성 투영

권문용 청장은 1967년 제4회 행정고시 출신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기획원에 근무할 당시 서 석준 前 장관을 모시며 대한민국 중화학 공업에 관한 주요정책을 입안한 점을 부각”해 말했다.

중앙관료로서의 지방행정에 투영한 그의 행정특색은 능률적으로 처리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보고서는 1장으로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상급자에게 잘 보이려는 공직의 문서주의의 특성상 화려하게 겉표지를 만들고 문서내용도 여러 장으로 꾸며왔는데 그는 그와 같은 가식을 집어던졌다.

그는 간단하게 요약하여 1장으로 보고하고 종이 없는(Paperless) 보고를 즐겼다. 그는 10쪽짜리 보고서보다 1장짜리 PPT문서에 방점을 더 쳐주었다.

당시 공무원들이 Power Point를 통하여 보고하는 것은 갓 들어 온 젊은 직원들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이로써 강남구에는 그동안 필경사 출신이나 글 예쁘게 쓰는 직원들이 도태되고 아래 한글이나 PPT 등 새로운 문서편집 기법을 잘 다루는 직원들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권 청장은 특히 행정의 Out-Sourcing을 강조했다. 그는 “뉴질랜드의 경우 국방을 제외한 다른 분야를 외부의 전문가에게 맡긴다”며 과감한 Out-soucing을 주문했다. 일을 잘 못하는 공무원이 사업을 붙잡지 말고 외부의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토록 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이로 인해 각 부서에서 Out-Sourcing 대상을 발굴해 대부분 아웃소싱함으로서 실적위주의 성과를 내며 지방행정의 효율성을 높여갔다.

에를 들면 약 700여명에 이르던 청소인력(상용)을 아웃소싱하여 청소업무를 공공입찰에 부쳤다. 테헤란로 이남지역은 아웃소싱을 위해 퇴직한 인력들이 구성한 상록수기업에 맡기고 민간기업을 공모하여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에 따라 테헤란로 이북지역의 청소는 민간기업에 공개경쟁을 통하여 선정하고 서로 평가하여 경쟁을 유도했다.

성과가 좋은 것으로 분석되자 뒷골목에 대한 청소도 Out-Sourcing 하도록 추가 조치했다. 뒷골목의 청소를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치자 뒷골목의 권역을 8개로 나누어 작업토록 하되 해마다 2번의 평가를 거쳐 경쟁하는 구도를 구축한 것이다.

지저분했던 강남지역의 청소상태가 깨끗해졌다는 평가를 주민들로부터 받기 시작한 것은 이때 부터였다. 설 명절이나 추석 때면 벌어졌던 청소원들의 점포와 가게들에 대한 수금행위도 이때 덤으로 없어졌다.

◆ 자유주의자, 시장경제 주의자, 권문용 구청장

권 청장은 구청장 시절 한비자의 이야기를 가끔 강조하곤 했다. “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큰 벌레를 닮았다. 사람이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큰 벌레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렇지만 아낙네가 누에를 손으로 줍고 어부가 장어를 손으로 움켜쥐는 것은 거기에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라며 자유시장 경제의 원리를 강조했다.

그들이 뱀을 닮았지만 맨손으로 만지고 누에는 큰 벌레를 닮았지만 징그럽다고 여기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을 다루면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데 권 청장은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을 정상이라고 보았고 인간의 욕망을 당연시했다

이 원리를 지방행정에 반영하여 그는 공무원들에게 “격려제도”를 시행하였다. 처음에는 여럿이 있는 공식 행사에서 박수격려를 하기 시작하였고 격려품으로 만년필이나 상품권 등을 주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격려금을 공식화하여 년 간 15억 원 정도를 직책추진 활동비로 책정하여 예산으로서 소정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낸 공무원들에게 하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무원들의 승진에 확실히 반영되기도 하였다.

격려제도는 능력과 실적에 걸 맞는 포상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선 그의 판단이었지만 “그로인해 공무원들의 승진제도가 완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과도하게 시행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한때 구청사 내외에 만연하여 타 부서의 업무를 가져오거나 부하직원의 일을 자기의 실적으로 가로채는 등 부작용이 일기도 하였지만 격려제도를 통하여 복지부동 공무원들이 솔선하여 일에 나서게 되었고 소위 ‘빽’으로 진급과 보직을 해 오던 과거의 관행을 일거에 청소해 버리는 긍정의 효과도 있었다.

그는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의 칼럼을 보고 “그 분을 모셔다가 전 직원들에게 교양 강좌를 하라”는 지시로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행정집행에 반영케 하는 등 경제기획원시절의 경제원리를 지방행정에 투영하는데 노력하였는데 최근 필자와의 면담에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과 박정희 대통령의 무역지상 경제주의로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고 평가하여 본인이 자유주의자요, 시장경제 주의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광화문 우파집회에서 만난 권문용 전 청장은 이젠 “정치발전이 우리의 과제”라며 “동지”라는 말로 함께하길 원하였다.

2021년 광화문 집회에서 만나 동지의식을 강조한 권 청장

◆5무(無)에 의한 지방인재의 등용방식

권문용 구청장은 재임시절 5無를 외치고 다녔다. 그간 말한 5無란 ‘지연’ ‘혈연’ ‘학연’ ‘남녀’ “노소”를 불문하는 것을 말한다. 공무원들의 승진과 전보에 있어 오로지 능력을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의지였다. 간혹 5무로 인해 자신이 생각하는 공무원에게 보직경쟁이 안될경우에는 국장들에 의한 공개선정의 방식으로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자리에 앉히기도 하였다.

그는 정기인사 따윈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지시해 관철시켰다.

2010년 경 필자에게 떨어진 갑작스런 지시는 “치수과를 없애고 모두 아웃소싱하라”는 명령이었다. 경위를 알아보니 양재천 자전거 도로의 관리가 엉망이었음에도 이에 대한 조치를 소홀히 한 담당 팀장에 대한 불만으로 야기된 지시였다.

결국 필자가 나서서 양재천관리팀을 새로 만들어 치수,공원,녹지,교통 및 건설관리 부분을 통합하여 관리토록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그는 과단성있는 결정으로 가끔 공무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강력한 리더쉽도 있었다.

암튼 승진에 목말랐던 공무원들이 오로지 일과 성과로만 승진과 전보가 되는 현상은 과거 청탁과 인적 연결고리로 움직여 왔던 강남구청 직원들에 대해 획기적인 변화였다.

구청장의 출신지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인사특성에 비추어 볼 때 나름의 기준으로 외부의 청탁을 배제하기 위해 진행되었던 강남구의 인사와 격려제도는 비록 소수의 불만이 있긴 했어도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 같은 평가는 앞에서 열거한 양재천 정비사업, 행정에의 IT도입사업, 전국 최초의 인터넷 방송사업과 전자도서관 설치사업과 Out-sourcing 사업 등은 5무에 의한 동력 제공이 기여한 바 컸다.

◆부패척결에 민감한 구청장

권 청장은 종종 ‘매천야록’을 거명하며 “조선말 황헌은 매관매직의 횡횡으로 세도정치의 폐혜로 몰락해가는 시국을 한탄했다”며 공직자의 청렴”을 강조하고 “정치인의 매관매직”을 비판했다.

그는 공무원의 청렴은 잡부금 없는 상태에서 나온다며 과감하게 부서별로 책정된 격려금을 일정부분 예산에 반영했다. 과거에는 각 과장들이 팀장들과 식사하는 경우에는 팀장이 접대하고 팀원들과 팀장이 식사하는 경우 팀원들이 식사비를 갹출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각 팀에서 공통경비를 걷어 식비 등으로 집행하는 과정에서 불만이 있는 직원도 있다”는 보고를 받고 정상적으로 집행된 격려금이 잔존 부조리를 모두 없앨 것으로 생각했다.

한번은 강남구민회관 관리직원이 토요일 근무 후, 회관예식에서 하객용 타월을 얻어갔다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했다. 그는 구의회에 올 때마다 엘리베이터에서 관리과 직원들을 만나면 “너 타월 공짜로 받지 마!”라고 하여 엄청 무안했다는 투덜거림을 필자가 공무원들로부터 들은 적도 있다.

그가 강남구청장으로서 근무했던 3선 11년의 기간 동안 강남구는 번영을 이루었고 행정은 일취월장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일을 주도했던 분이 지난 주 강남의 큰 별로서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 권문용 구청장에 대한 평가

그가 지방행정을 수행하면서 남긴 치적은 강남구정에 머물지 않고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지방자치단체 협의회를 구성하여 회장을 이끌면서 지방세의 조정(광역시게를 시군구세로 전환)과 공동세의 반대에도 앞장섰다. 이를 위해 강남구의 경우 세수의 절반을 서울시에 납부하여 공동 집행하는 재산세를 초기에 막아냈다.

재산세 광역시세화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지방의 시장군수와 연합하여 차관회의까지 올라간 안건을 부결시킨 사례도 있다. 이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결연사업을 맺어 설과 추석 명절에는 직거래 장터를 펼쳐 지방상인과 생상의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노력에도 그의 뜻은 현재 전 박원순 시장의 집요한 추진으로 강남구 재산세 세수의 절반은 강남외의 지역에서 공동으로 집행되고 있다.

강남구청에서 지방행정을 실무적으로 담당했던 그는 정치인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3선의 임기를 3개월 여 앞두고 2006년 2월 사표를 제출하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나섰다. 결과는 당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2006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장 선거일 100일을 앞두고 그가 머물던 강남구청장직을 내려놓고 있다.

그후 5무를 부르짖던 권 청장이 자신의 연고지라는 이유로 충남 연기군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것이다. 그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 이후 강남의 구청장직에 대한 지방선거가 있을 때마다 그는 구청장후보로 나섰다.

결과는 모두 공천과정에서의 낙천이었다.

소신있는 강남사람들은 이와 관련 필자에게 누차 아래와 같은 아쉬운 감을 피력했다. “저 분이 강남구에 어른으로 그냥 남아 계셔야 할텐데... 쯔쯧..” 하며 안타까와 한 것이다.

필자는 공직을 떠나 언론매체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2022년 지난 지방선거 전에 노골적으로 직언한 바 있다. "강남구의 어른으로 남아계셔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언제까지 선수로서 뛰셔야 직성이 풀립니까?" 라며 힐난성 질문을 퍼부은 바 있다.

그때문 인지는 몰라도 그 분은 강남구에서의 주요 이슈 있을 때마다 필자에게 전화로 의견을 물었고 출마 중지요청에 ”그래 네 말 알아 들었어...“하며 마지막 의지를 접었다.

권청장은 말년에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와 관련하여 강남에서 장기표 선생과 함께 활동하면서 국회의원 200명이면 족하다는 이승만 정권당시의 국회의원 숫자를 거론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 장기표 선생과 함께 국회의원 특권페지운동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은 모습


필자와 같이 강남구에서 공무원으로서 권 청장을 보필했고 서울시의회와 강남구의회 의원으로서 활동했던 이석주 전 의원은 “강남의 큰 별이 떨어져 애석하기 그지없다”며 그의 타계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누구든지 인생전반을 객관적으로 보면 아쉬운 점도 남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과(過)의 업적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권 구청장을 내내 수행했던 비서관 출신 강남구의회 이동호 의원은 “권문용 구청장의 구청장직 11년은 총체적으로 말해 그의 투박한 성격과 리더십에 구청 간부들의 정교한 정책이 덧입혀져 성공한 구청장으로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권문용 전 구청장은 “낙하산 공천 이젠 그만!! ”이라고 말하며 ‘강남구 국민의힘 책임당원 공정공천 시민감시단’을 이끌었으며 ‘강남구책임당원협의회’를 이끌며 직 간접적으로 지역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2022년 강남구공정공천감시단 발대식을 이끌고 있는 권문용 전 구청장


권 구청장의 정치적 도전에 뜻을 함께 했던 이 충우씨는 “그분의 마지막 뜻은 강남구에 낙하산공천을 막고 아래로부터의 선거에 의한 공천혁명 이었다”며 “그 분의 노력과 정치개혁 의지는 이제 우리의 숙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권문용 청장은 나무위키 최종 이력이 '2023년 8월 31일 사망'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강남구청에서 약관 52세의 나이에 3선의 구청장 직을 맡아 열심히 활동하다가 향년 80에 타계한 권문용 전청장을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그 분의 정책적 가르침과 정신이 강남구에 잘 남아 후배들의 행정에 좋은 영향이 미치길 기대하며 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에도 잘 전파 수용되길 앙망한다.

▶편집자 주 : 강현섭 기자는 강남구청 공무원으로서 3선의 권문용 구청장을 11년간 지근 거리에서 모시며 활동했고 최근 그의 정치적 행보에 동조 취재한 바 있다.

시사의창 강현섭 기자 : rgio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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