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항상 묻지마 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감
개인 스스로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
"나는 쓸모없는 사람…반성한다" 영장심사 10분만에 끝나
피해자 사촌 "갱생 가장해 사회에 다시 나올까봐 두렵다"
[시사이슈=정용일 기자] 지난 21일 오후 2시7분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에서 80여m 떨어진 상가 골목 초입에서 20대 남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30대 남성 3명에게 잇따라 흉기를 휘두르는 참극이 벌어지면서 그 충격에 호신용품 구매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호신용품을 판매하는 서울의 한 매장
지금까지 호신용품은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젊은 남성들 역시 묻지마 범죄에 대한 두려움에 호신용품 구매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처럼 묻지마 범죄의 경우 성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어느곳에서나 갑작스럽게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유독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엣 대낮에 그것도 젊은 남성들만을 대상으로 범행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젊은 남성들이 충격을 받은 모습니다.
직장인 송모(28)씨는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을 뉴스로 접한 뒤 후추 스프레이를 구매하기로 했다. 후추 스프레이는 위험한 상황에서 캡사이신 등 최루액을 상대에게 뿌릴 수 있는 휴대용 호신용품으로서 이미 그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제품이다.
송씨는 "힘없는 여성이나 아이, 노인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사건은 남자만 공격해 놀랐다"며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어 필요한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인 김모(34)씨도 신림동 사건 이후 인터넷에서 호신용품을 자주 검색한다. 김씨는 "신림역은 서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법한 장소라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사건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무서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발생한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으로 시민들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처럼 호신용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으며, 항상 묻지마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호신용품 네이버 쇼핑 홈페이지 20대 남성 '트렌드 키워드'
24일 네이버 쇼핑에 따르면 사건 다음날인 22일 하루 동안 20∼40대 여성과 20∼50대 남성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모두 호신용품인 것으로 집계됐다. 10대 남성 사이에서는 2위, 10대와 50대 여성은 3위를 차지했다.
후추 스프레이를 비롯해 호신용 삼단봉, 전기충격기, 총기 모형 테이저건 등이 검색 상위권에 올랐다. 후추 스프레이는 네이버 쇼핑 전체에서 '많이 구매한 상품' 4위에 오르기도 했다.
휴대가 간편한 호신용 삼단봉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림동 사건 같은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면 다른 사람을 모두 믿을 수 없게 되고 자기 안전은 자기가 지켜야겠다는 심리가 작동한다"며 "불안감을 느낀 개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번에는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범죄가 일어난 만큼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나는 범행 대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성인 남성들 불안감이 더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제도적으로 예방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범죄 위험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선별해 막을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있다면 좋겠지만 개인이 스스로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이 우선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조모씨가 23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한편 서울 신림동 번화가에서 행인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벌여 4명을 살해하거나 다치게 한 조모(33)씨가 23일 경찰에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소준섭 판사는 이날 오후 2시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소 판사는 약 10분 만에 영장심사를 마치고 2시간30분 만인 오후 4시40분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씨는 서울 관악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조씨는 이날 영장심사 출석을 위해 경찰서를 나서면서 취재진에게 "너무 힘들어서 저질렀다"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정 앞에서는 "예전부터 너무 안 좋은 상황이었던 것 같다. 제가 너무 잘못한 일"이라며 "저는 그냥 쓸모없는 사람이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자신의 처지를 탓했다.
경찰은 조씨를 상대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PCL-R)를 하는 등 자세한 범행 경위와 배경, 범행 이전 행적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범행이 잔인하며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특정강력범죄법에 따라 이번주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21일 오후 2시7분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에서 80여m 떨어진 상가 골목 초입에서 20대 남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30대 남성 3명에게 잇따라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살인미수)를 받는다.
길이 100여m인 골목에서 남성 3명을 흉기로 찌르고 골목을 빠져나간 조씨는 인근 모텔 주차장 앞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했다. 조씨는 첫 범행 6분 만인 오후 2시13분 인근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병원에 실려 간 부상자 3명 중 1명은 퇴원해 통원 치료 중이고 나머지 2명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당초 위독한 상태로 알려진 피해자도 고비를 넘겼다. 조씨는 피해자 4명 모두와 일면식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피해자 유족이 국회 홈페이지에 올린 청원
숨진 피해자의 유족은 이날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사형 선고를 요청했다. 자신을 피해자의 사촌 형이라고 밝힌 청원인 김모 씨는 "신림역 칼부림 사건의 가해자가 다시 사회에 나와 이번과 같은 억울한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형이라는 가장 엄정한 처벌을 요청한다"고 적었다.
김씨는 "악마같은 피의자는 착하고 불쌍한 제 동생을 처음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무참히 죽였다"며 "유족들은 갱생을 가장한 피의자가 반성하지도 않는 반성문을 쓰며 감형을 받고 또 사회에 나올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청원인은 자신의 사촌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외국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을 돌봐온 실질적 가장이며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온 대학생이라고 밝혔다.
그는 고인이 신림동에 저렴한 원룸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잔인한게 13차례나 흉기에 찔렸다고 말했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무차별로 공격하는 범죄행위인 묻지마범죄는 특별한 동기와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대비하기 매우 힘들고, 사람들에게 무고한 자신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주어 사회를 경직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큰 사회적 문제임에도 이렇다할 대책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같은 묻지마 범죄로 교도소에 들어간 죄수들은 같은 죄수들 사이에서도 투명인간 대접을 받으며 교도관들도 그다지 엮이려하지 않을 만큼 모두가 기피하는 유형이다.
오죽하면 교도관은 물론 같은 범죄자들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미치광이로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을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처럼 잃을게 없는 막장인생이라 괜히 엮여봤자 본인만 손해이기 때문에 교도소 내에서조차 계급밖의 존재로 취급당하며 외면당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스스로의 방어가 최선책임을 명심하자.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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