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월간 조선> 오보 사태로 본 언론의 문제점

편집부 승인 2023.06.05 11:29 | 최종 수정 2023.06.05 11:30 의견 0

건설노동자 분신 사망 사건과 관련한 <조선일보>와 <월간 조선>의 보도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검증 없이 기사화하고 타 언론사의 검증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상황. 결국, 일부 오보임을 인정했지만 <조선일보>의 이런 식의 보도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조선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칼보다 펜이 무섭다’는 말이 무색하게 '펜'은 무게를 잃고 책임감을 상실해 가고 있다. 국내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을 찍고, 기자들은 ‘기레기’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윤 대통령 미국 방문 당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이 질문을 던지는 외신 기자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우리 기자들의 사진이 인터넷을 돌며 조롱거리가 됐다. 그럼에도 언론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집중포화는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고, 진실을 거짓으로 바꿔 놓는다. 날조된 사실은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쉽사리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언론은 더욱 신중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현 시국에서 언론은 중립조차 잡기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보도된 <조선일보> 기사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언론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조선일보>, <월간 조선> 기사들


[시사의창 6월호=이미선 기자] 건설노조 표적 수사에 항의해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 씨의 사망과 관련 <조선일보>는 5월 17일자 ‘분신 노조원 불 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는 제목으로 양 씨의 분신 당시, 곁에 있던 동료 홍 모 씨가 말리지 않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뒤이어 18일 <월간 조선>은 ‘[단독] ‘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고인이 남긴 유서가 조작 또는 대필됐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 기사의 근거는 입수한 경로를 알 수 없는 현장 CCTV 영상과 익명의 목격자였고, 월간 조선 기사의 근거는 '굳이 필적 감정을 하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차이'라는 것이다.

근거 부족 기사에도 여론 들끓어
면밀히 따지지 않아도 근거가 상당히 부족해 보이는 이런 기사에도 SNS상에서는 고인의 죽음은 물론 A씨와 건설노조를 비난하는 글이 무수히 쏟아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해당 기사를 인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재차 의혹을 제기했고,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신전대협’은 이날 서울중앙지검에 해당 노조 간부를 자살에 도움을 준 경우 해당되는 ‘자살방조’ 혐의로 고발까지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사는 상당히 왜곡된 것으로 드러났고, 월간 조선의 기사는 오보로 밝혀졌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분신 방조 기사에 대해 현장에 있던 경찰 관계자는 “(양씨가) 바로 불을 지른 게 아니고 주위에 시너를 뿌려둔 뒤 동료가 왔을 때도 라이터를 든 채 ‘가까이 오지 마라. 여기 시너 뿌려놨다’고 경고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괜히 다가갔다가 자극받은 양씨가 라이터를 먼저 당길 수도 있고, 만약 들어가서 말렸다면, 둘 다 같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사건 현장에서 옆에 있던 YTN 기자들의 진술을 봐도, 노조 간부는 (분신을 시도하는) 양씨에게 ‘하지 말라, 그러지 말라’고 계속 말렸다고 한다. (조선일보) 기사는 해당 기자가 알아서 쓴 거지, 경찰에 취재하거나 연락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월간 조선의 유서 대필 의혹의 경우도 건설노조가 양 지대장이 남긴 4개의 유서와 생전에 썼던 노조가입서, 지출결의서, 활동수첩 등을 국제법과학감정원에 맡겨 필적감정을 의뢰한 결과 모두 같은 필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와는 별도로 월간조선의 보도 직후 MBC가 복수의 문서감정사에게 필적감정을 의뢰한 결과에서도 한 사람이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기자회견 하는 건설노조(사진 연합뉴스)


건설노조, ‘양회동 분신 방조 의혹’ 보도 언론사 고소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고(故) 양회동 씨의 분신 당시 현장의 민주노총 간부가 이를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에 대해 5월 22일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건설노조와 양씨의 유족,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부지부장 홍모씨는 기사를 작성한 조선일보 자회사 조선NS 소속 최모 기자와 조선일보 사회부장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또 분신을 막지 않았다는 기사를 거론하며 페이스북에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건설노조는 해당 기사에 삽입된 현장 폐쇄회로(CC)TV 캡처 사진의 영상을 수사기관 내부 관계자가 건넸을 것이라며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양씨의 유서 중 일부가 대필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보도한 월간조선의 김모 기자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사자명예훼손의 혐의로 고소했다.
건설노조 측은 고소장을 내기 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망인의 동료와 가족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야기한 악의적인 기사”라며 “분신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자극적으로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18일 ‘[단독]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 기사 캡처


<월간 조선> 유서 대필 의혹 보도, 오보 공식 인정
오보임이 확인되고, 고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후속보도나 정정보도 없이 버티던 <월간조선>은 5월 30일 자사의 ‘[단독]‘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 기사에 대해 ‘해당 기사의 취재 및 출고 경위를 조사했고 중대한 결함이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오보였음을 공식 인정했다.
<월간조선>은 이날 인터넷판 메인에 ‘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 기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고, “기사가 나간 이후 ‘필적 감정 결과 유서의 필체는 고인의 것이 맞는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며 “취재 기자는 필적 감정 같은 기초적인 사실 확인 절차를 생략한 채 기사를 썼고, 이를 걸러내야 할 편집장과 데스크들은 게이트 키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어 “취재 기자가 의혹 제기의 근거로 삼은 것은 건설노조 내부 회의 자료와 민노총 홈페이지에 각각 게재된 고인의 유서였다. 기자는 두 문서에 나오는 유서 필체가 서로 다르다고 판단했고 민노총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반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월간조선은 기사가 나간 후 필적 감정 업체 두 곳에 필적 감정을 의뢰, 5월 21일과 5월 29일 해당 유서들의 필체가 동일인의 것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월간조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라며 “잘못된 기사로 인해 고통을 받은 고 양회동씨의 유족과 건설노조 관계자들께 깊이 사과드린다. 독자 여러분께도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덧붙여 “내부적으로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한편 이번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취재·송고 시스템 정비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독자 여러분께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30일 월간조선의 사과문 공지 갈무리. 월간조선 웹사이트


한두 건이 아닌 <조선일보>의 오보 사과 기사
<조선일보>의 오보 인정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3월 28일 조선일보 1면 '“재판 왜 많이 시키나” 인권위 달려간 판사' 기사에서 A판사가 선고 업무가 늘어나는 것은 부당하며 인권위 진정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했으나, 오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판사가 재판이 많다면서 인권위에 달려간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조선일보는 3월 30일 1면에 '‘배석판사의 인권위 진정’ 기사 바로잡습니다' 기사를 내고 “독자 여러분, 법원, 인권위 관계자들에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사실확인 의무를 성실히 하지 않은 점도 인정했다.
이 외에도 2020년 8월 28일자 지면 기사에서 조국 전 장관 딸 조민씨가 26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피부과를 찾아가 담당 교수와 면담을 가졌다고 보도하며 “조씨는 면담 전부터 자신을 ‘조국 딸’이라고 밝혔으며,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이 병원의 인턴 전공의 과정에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8월 29일자에서 조민씨와 연세대 의료원에 사과하며 오보를 인정했다. 이 신문은 “사실관계 확인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부정확한 기사였다”며 “이 기사는 당사자인 조민씨나, 조민씨가 만났다는 교수에게 관련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작성된 것으로, 1차 취재원이 아닌 2차 취재원의 증언만을 토대로 작성됐다”고 밝혔다. 또 <조선일보> ‘코로나 오보’ 받아쓴 TV조선·채널A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징계를 받은 일도 있다.

의미 없는 보도사진으로 국민 피로도 높여
소위 메이저 언론이라는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 행태는 언론 전체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조선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한동훈 장관이 국회에서 펜을 떨어뜨리고 줍고 주운 장면을 동작 프레임으로 나눠 뉴스로 올린 사례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비난 섞인 조롱을 받고 있다.
과연 기자는 이 연속성 기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개인의 팬심으로 올린 것일까?
의도를 알 수 없는 기사에 누리꾼들은 ‘나중엔 휴지로 똥 딱는 것도 기사로 나오겠네. 기자하기가 참 쉽네요’, ‘기레기들 별게 다 기사꺼리네...’ 등의 댓글을 남겼다. 다른 커뮤니티 누리꾼은 ‘사는 것도 팍팍한데 한동훈이 볼펜 줍는 게 기사냐, 기레기들 때문에 신문도 뉴스도 못보겠다’며 무분별한 언론에 대한 피로를 호소했다.

MBC 압수수색, 몸 사리는 언론
한편, 5월 30일 언론들은 경찰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MBC 기자의 자택과 국회를 압수수색하는 것에 대해 일제히 보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한동훈 장관의 입장까지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개인정보를 유포하고 악용하는 것이 드러나는데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 장관은 또 이번에 압수수색을 당한 MBC 기자가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욕설 파문을 보도해 고발당한 당사자란 점에서 보복성 압수수색이 아니냐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의 문제이다. 채널A 사건 압수수색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굉장히 지금과 다른 반응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장관의 이 같은 대답에 일각에서는 2020년 당시 국회의원 신분으로 조국 전 정관의 딸 조민씨의 고교 시절 학교생활기록부 유출한 주광덕 남양주시장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주 의원은 2020년 9월 공익제보라며 조 전 장관 딸 조민씨의 생기부를 국회에서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한 시민단체가 불법유출이라며 주 의원을 고발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며, 주 의원에 대한 통신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1차 영장 신청 때 통신영장은 불필요하다며, 이메일 영장만 법원에 청구한 바 있다. 한동훈 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지금의 법무부라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러한 취지의 지적은 나오지 않고있다.
앞서 김남국 의원 60억 코인 보유 기사가 쏟아지던 당시에도 김남국 의원은 <조선일보>의 의혹 기사에 대해 “가상화폐의 보유 수량이나 거래 시점 등은 정확히 알기 쉽지 않은 개인의 민감한 정보”라며 “구체적인 거래 정보가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유출된 것인지 그 경위에 위법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코인 투자에만 촛점을 맞추고 기사를 쏟아내면서,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서는 언급 정도에 그쳤다.
법무부 장관이 ‘개인정보 유출 피해’에 대한 강력한 법 대응을 강조했으니, 향후 김남국 의원의 ‘개인정보 유출’ 건도 고발이 이루어지면 사법기관이 이렇게 강하게 움직이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를 쏟아낼지 주목해 볼 만하다.

5시간 만에 바뀐 국민일보 기사 제목 (출처_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화면 캡처)


몇 시간 만에 제목 바뀐 기사, 비참한 언론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사례도 빈번하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G7 회의에 참석한 윤 대통령에게 인도의 모디 총리가 “가수로서도 참 훌륭하십니다. 팬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국민일보는 5월 20일 '尹, 히로시마서 한·인도 정상회담...모디 "가수로서도 훌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송출했다. 그리고 5시간 뒤 해당 기사의 제목을 '尹, 히로시마서 한·인도 정상회담...모디, 尹리더십 평가'로 바꿔 올렸다.
방송 뉴스를 통해서도 보여졌던 장면을 사실에 입각해 기사 제목을 뽑았는데, 왜 수정을 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 있다. 지난해 윤 대통령 미국 순방 중 발생한 비속어 사용 논란 영상의 ‘대통령 발언 내용’에 대해 공식 석상이 아니었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데다 외교상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대통령실의 ‘간곡한’ 요청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기사 제목 수정도 대통령실의 요청이 있었거나, 일련의 사태를 뒤늦게 인지한 언론사 데스크의 심기 배려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흔치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언론사 또한 없을 것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시국에 정의는 객기처럼 보이는 지경까지 이른 듯하다. 적당히 던져주는 자료로 원하는 기사를 써야 일신과 가족과 주변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공공연한 압력에 꿈틀하는 언론과 기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을 만든 것 또한 언론이다. 권력에 편입해 기득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한 것도 언론이다. 하지만 그들의 초심은 정의와 진실이라는 것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임계점은 반드시 있다. 지금보다 더 삼엄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린 선배 언론인이 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왜곡된 기사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투사는 되지 못해도 반역자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해찬 전 총리가 최근 충남 강연에서 하신 말씀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잘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언론 환경을 가져야 한다. 기성 언론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차라리 유튜브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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