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을 낮춘 미술관, 자유낙하 중인 키키 스미스를 만나다

서병철 승인 2023.02.06 19:28 의견 0
<꿈> 이라는 작품에 다가가서 감상중인 여인

[시사이슈=서병철]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이다. 내적 자유로움을 느끼길 바란다”라고 말하는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라는 작품 앞에 섰다. 떨어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 자신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헝클어진 머리가 어딘가로 떨어지고 있다는 효과를 자아냈다. 평면 판화임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조각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도달할 곳을 모른 채 끝없이 떨어지는 움직임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로 엄습했다. 평소에 접어서 보관하다가 관람자가 작품을 차례로 펼쳐 나가면서 작품과 직접 신체적 관계를 맺도록 유도한 아티스트 북 형식으로 제작되었다는 특징도 있었다.

키키 스미스는 1980~1990년대 여성성과 신체를 다룬 구상 조각으로 유명한 동시대 미술 작가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조각,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아티스트 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품 총 140여 점을 소개하였다. 전시 공간은 곡선형 순환적 구조로 작가가 본인의 예술 활동을 “마치 정원을 거니는 것과도 같다”라고 일컬으며 강조해 온 배회의 움직임을 나타냈다. 세부 구성도 핵심적으로 발견되는 서사구조, 반복적 요소, 에너지 같은 몇몇 구조적 특성에 기초하여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 <배회하는 자아>, <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로 구분되어 있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종교, 신화에서 도상을 취하고, 인간을 넘어 동물과 자연, 우주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는 현재진행형 작가의 면면을 보았다.

청동 조각 <메두사>에서는 무뚝뚝한 중년 여성의 나신인데 왜 메두사라고 명명했을까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가는 여성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메두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의 이목을 끌었던 또 하나는 정보 약자를 위한 알 권리 제공을 목적으로 주요 작품 옆에 ‘쉬운 글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이 사회적기업과 협력, 공모를 통한 시민들까지 직접 참여해서 그림을 보고, 주요 단어를 기록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완성했다. 작가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갑자기 지난해 6월 프랑스 니스 샤갈미술관에서 색다른 경험이 떠올랐다. 샤갈 그림 옆에 QR코드 2가지, 검은색 일반과 파란색 어린 아이(Infants, Kids) 버전이 나란히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어린아이용 QR 코드는 어른과 아이가 쉬운 말로 대화하는 형식이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국 미술관에서도 도입하면 좋겠다’라는 생각했었다.

쉬운 글 해설, 무료입장까지 일반인들에게 미술을 쉽게 접하도록 문턱을 낮춘 서울시립미술관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지속적으로 문턱을 낮추는 미술관을 기대해 본다.

샤갈 <아브라함과 세 천사> 라는 작품을 설명하는 두 QR 코드

서병철 기자 bcsu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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