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읍성에서 출토된 ‘비격진천뢰’ / 고창군 제공
[시사의창=최진수기자]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읍성에서 출토된 ‘비격진천뢰’가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되면서, 조선 최첨단 화약무기가 지역을 대표하는 과학유산이자 국가적 연구자산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현장에서 발굴된 완형 유물이 설계·제작 원리를 복원하는 핵심 증거로 평가받은 만큼, 고창군의 역사·문화·관광 전략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 2018년 군기고 발굴에서 11점 확인…완형 1점, 과학사 판도 바꿨다
고창군은 9일 “무장읍성 군기고 일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무장읍성 출토 비격진천뢰’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중앙과학관이 운영하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됐다”고 밝혔다.
‘무장읍성 출토 비격진천뢰’는 2018년 무장읍성 군기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조선 시대 화약무기 유물 11점을 통칭한다. 비격진천뢰는 조선이 독자 개발한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내부에 설치된 발화 장치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폭발하도록 설계된 작렬탄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공포에 떨었던 ‘조선의 비밀병기’로 평가받으며, 우리 군사·과학기술사의 상징적 무기로 여겨져 왔다.
무장읍성 발굴의 결정적 성과는 ‘뚜껑까지 갖춘 완형 비격진천뢰 1점’이다. 그동안 문헌과 파편 유물에만 의존해야 했던 연구가 완형 실물의 등장으로 국면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부 구조, 점화 방식, 화약 충전과 탄체 구성 등 설계 원리를 실측·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비격진천뢰를 둘러싼 각종 가설이 검증 단계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현장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고창군 관계자는 “완형 비격진천뢰는 단순한 ‘전쟁 유물’이 아니라 조선 과학기술 수준을 입증하는 실험실이자 교과서”라며 “기존 문헌·유물 연구가 갖고 있던 한계를 실제 실물 분석으로 뚫어낸 결정적 열쇠”라고 의미를 부각했다.
■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과학유산…‘연구·교육·관광’ 삼중 효과 기대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제도는 과학기술에 관한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크고, 후대에 계승할 필요가 있는 자료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등록·보존·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국립중앙과학관이 소관 부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의해 자료를 심사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과학유산으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2019년 첫 12점 등록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총 81점이 등록돼 있으며, 올해는 11점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무장읍성 출토 비격진천뢰’는 과학기술사 분야 등록자료로 분류됐다. 2023년에는 조선 후기 재해·기상·농업 정보를 집대성한 ‘이재난고’가 같은 분야에 올라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등록으로 ‘무장읍성 출토 비격진천뢰’는 단순 지역 유물을 넘어, ‘국가가 책임지는 과학사 핵심 자료’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국립중앙과학관의 보존·복원 기술 지원 ▲전국 순회전시 및 기획전 참여 ▲디지털 콘텐츠·스토리텔링 개발 등 다양한 국가 차원의 지원과 협업도 가능해진다.
고창군은 “국립중앙과학관과의 협업을 통해 비격진천뢰를 소재로 한 전시·교육 프로그램, 다국어 디지털 콘텐츠, 과학 캠프 등 활용 사업을 적극 발굴하겠다”며 “청소년 과학체험, 군사·역사 교육, 지역관광과 연계한 패키지 상품까지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신청부터 등록까지 ‘체계적 검증’ 통과…보물 승격·국가유산 지정도 본격화
‘무장읍성 출토 비격진천뢰’는 고창군이 국립중앙과학관에 등록을 정식 신청한 뒤, 서류검토–전문가 서류심사–현장조사–종합심사를 거쳐 최종 등록이 결정됐다. 단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유물의 진정성(진품 여부) ▲완전성 및 보존 상태 ▲과학기술사적 희소성과 대표성 ▲교육·전시 활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는 과정이다.
고창군수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등록으로 ‘무장읍성 출토 비격진천뢰’가 과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임을 국가가 확인해 준 셈”이라며 “그동안 무장읍성 비격진천뢰의 학술적 가치 규명과 보존·활용을 위해 국가유산 지정 추진 용역을 진행했고, 올해 국가유산청에 보물 승격도 정식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인정한 과학유산이자 잠재적 국가유산 후보인 만큼, 비격진천뢰를 무장읍성·고창읍성, 동학농민혁명 유적과 연계해 ‘호국·민주·과학’이 결합된 입체적 역사콘텐츠로 키우겠다”며 “전북특별자치도 서해안 방위의 최전선이었던 무장읍성의 위상을 재정립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군은 앞으로 ▲전문 학술대회와 국제심포지엄 개최 ▲비격진천뢰 실측·복원 모형 제작 ▲AR·VR 체험콘텐츠 개발 ▲야간 미디어파사드 공연 등과 연계해, ‘과학기술·군사·역사’가 결합된 융복합 콘텐츠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 “조선 최첨단 무기, 지역이 키운 국가 과학유산”…군민 참여형 프로젝트 예고
비격진천뢰는 조선이 스스로 개발한 독창적 고급 무기체계라는 점에서, 해외 기술 의존도 높은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상징적 자산이기도 하다. 고창군이 이번 등록을 계기로 비격진천뢰를 ‘지역이 키운 국가 과학유산’으로 재정의하고, 군민 참여형 프로젝트로 확장할 수 있을지가 향후 관건이다.
군 관계자는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과 동학농민혁명, 서해 방어사까지 관통하는 입체적 스토리를 가진 유물”이라며 “청소년, 군 장병, 관광객이 함께 체험하고 배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창이 ‘살아있는 과학·역사 교실’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무장읍성 발굴에서 시작된 작은 쇳덩이 11점이 국가가 인정하는 과학기술자료로, 더 나아가 보물 승격과 국가유산 지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조선의 ‘하늘을 흔든 폭탄’ 비격진천뢰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을 대한민국 대표 과학·역사 교육도시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진수기자 ds4psd@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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