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전·현직 방위군 요원 두 명의 사진과 용의자 사진. (사진_REUTERS)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방위군 총격 사건 직후 이른바 ‘제3세계(Third World) 국가’에서의 이민을 “영구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며 전방위 반이민 드라이브에 나섰다. 아프간 출신 망명자가 백악관 인근에서 주 방위군을 총격한 사건을 계기로, 19개 ‘우려 국가(countries of concern)’ 출신 이민자의 그린카드와 망명 승인까지 다시 들여다보는 초유의 조치가 시작됐다.
이번 조치는 난민·이민 제도뿐 아니라 유학생, 장단기 취업비자, 가족초청 이민 등 전 분야에 걸친 ‘정치적 리스크’를 키우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 직접적인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글로벌 이주·유학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대학, 기업도 대응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제3세계 모든 이민 영구 중단”… 정의도, 범위도 불투명한 선언
사건의 발단은 지난 11월 말 백악관 인근에서 발생한 워싱턴 D.C. 방위군 총격 사건이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망명자인 라흐마눌라 라칸왈이 경계 임무 중이던 주 방위군 두 명에게 총을 쏴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진 뒤 체포됐다. 라칸왈은 2021년 미군 철수 당시 아프간 협력자를 수용한 ‘Operation Allies Welcome’ 프로그램으로 입국한 뒤 2025년 망명을 허가받은 인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에 “모든 제3세계 국가로부터의 이민을 영구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조 바이든 시기에 승인된 수백만 건의 ‘불법 입국’ 신청을 전면 재검토하고, 미국의 평화를 해치는 이들의 시민권을 취소하겠다”는 메시지까지 덧붙였다.
문제는 ‘제3세계 국가’라는 표현이 법률상 어떠한 정의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 국토안보부는 로이터 등 외신 질의에 “현재 19개 ‘우려 국가’ 국민에 대해 입국 제한과 그린카드 재검토가 진행 중”이라고만 밝힌 상태다.
이미 올 6월 트럼프는 ‘외국 테러리스트 및 공공안전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를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이란·소말리아·예멘·미얀마 등 12개국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대통령 포고(Proclamation 10949)에 서명한 바 있다. 이번 ‘제3세계 이민 영구 중단’ 선언은 그 연장선에서 훨씬 넓은 국가군을 포괄하는 상징적·정치적 선언에 가까운 조치로 해석된다.
그린카드·망명까지 재검토… 19개국 출신 이민자 전수조사 착수
트럼프 행정부는 워싱턴 방위군 총격 사건 이후, 미국 시민권·이민서비스국(USCIS)에 “모든 망명 결정의 일시 중단”을 지시했다. CBS 등이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망명 심사 담당자 전원에게 신규 승인 결정을 보류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국토안보부 산하 기관들은 19개 ‘우려 국가’ 출신 이민자의 그린카드와 망명 승인, 각종 체류 자격에 대해 “전면 재검토(full-scale, rigorous re-examination)”에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소말리아, 예멘, 쿠바, 아이티, 베네수엘라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들 국적 보유자는 이미 영주권을 취득했더라도 추가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새로 배포된 심사 지침에는 △해당 국가의 신분증·여권의 보안 수준 △테러조직 활동 여부 △정부 정보제공 협력도 등이 ‘중대한 부정적 요소(significant negative factors)’로 반영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준에 따라 일부 영주권자는 추방 절차 또는 시민권 신청 거부 위험까지 마주하게 됐다.
인권단체와 난민지원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아프간·중동·중남미 출신 난민을 지원해온 단체들은 “개별 범죄 사건을 빌미로 특정 국가·문화권 전체를 범죄와 연결하는 집단 처벌”이라며, 헌법상 평등권과 기존 연방법·법원 판결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동 성명에서는 “전 세계 난민·이민 체계를 뒤흔드는 선례를 남기고, 서방 동맹국의 난민 정책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유학생·전문직 비자에도 냉각효과… 글로벌 인재 이동 지형 흔들려
이번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난민·망명과 일부 영주권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미국 이민·비자 시스템 전체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는 SNS와 연설에서 “미국의 부담이 되는 외국인은 추방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향후 학생비자(F·M), 취업비자(H·L 등) 심사에도 “국가별 리스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미 팬데믹 이후 미국 이민·비자 적체는 심각한 수준이고,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진행된 각종 행정명령·포고령으로 불확실성이 누적된 상태다. 이번 ‘제3세계 이민 영구 중단’ 선언과 19개국 그린카드 재검토 지시는, 미국 유학과 취업 이민을 고려하는 전 세계 청년·전문직 인재에게 “미국 리스크 프리미엄”을 한층 더 높이는 신호로 작용한다.
국제유학·이민 컨설팅 업계에서는 이미 △캐나다·호주·영국·독일 등 대체 목적지로의 수요 이동 △미국 체류 중인 유학생·연구자의 조기 귀국·이동 가능성 증가를 점치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제3세계 출신 유학생·연구자에게는 비자 연장 심사 강화, 추가 신원조회, 입국 거부 가능성까지 부담 요인이 늘어난 상황이다.
한국인 유학생·한인사회 간접 영향… 직접 제재 대상 아니어도 ‘불확실성 비용’ 급증
한국은 현재 19개 ‘우려 국가’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으며, 기존 트럼프 행정부의 ‘무슬림·테러 위험국 여행 금지’ 조치에서도 직접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이번 조치로 한국 국적 유학생이나 취업 이민자가 당장 입국 금지·그린카드 재검토의 직접 타깃이 되는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 이민 행정 전반이 ‘국가별 위험도’와 ‘정치적 이벤트’에 민감하게 연동되는 구조로 재편되면서, 한국인도 간접적인 리스크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첫째, 전체 심사 적체 심화다. 망명·그린카드 재검토에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면, 학생·연구·취업비자 심사에 투입되던 행정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수개월씩 걸리는 비자 발급 대기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추가 심사 범위 확대 가능성이다. ‘제3세계’라는 표현 자체가 모호한 만큼, 정치 상황에 따라 ‘우려 국가’ 명단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비록 입국 금지 대상이 아니더라도 특정 국가군에 대한 추가 서류 요구·면접 강화가 뒤따를 수 있다.
셋째, 한인 사회의 안전·이미지 문제다. 미국 내 반이민 정서가 강화될수록 아시아계·이민자 전체를 향한 혐오가 높아지는 경향이 과거에도 반복됐다. 트럼프 1기 집권 당시 불거졌던 ‘중국계·아시아계 동시 공격’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사안이 중동·중남미·아프리카 출신에 우선 타겟을 맞추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백인 이민자 전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더 냉각되는 방향으로 흐를 소지가 크다.
한국의 과제… 유학·이주 전략 다변화와 이민 거버넌스 업그레이드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 미국 중심에 치우친 유학·이주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높은 교육 수준과 K-콘텐츠 인기로 한국 대학의 해외 인재 유치력은 높아졌지만, 역으로 한국 청년 다수가 여전히 “유학·이민=미국”이라는 단일 옵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정부 차원의 리스크 안내와 목적지 다변화가 필요하다. 미국 유학·취업을 준비하는 청년과 연구자, 기업 파견 인력에게 △비자 정책 변화 △심사 지연 가능성 △추가 신원조회 위험 등을 체계적으로 알리고, 개인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캐나다·유럽·호주·아시아권 우수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유학·연구·취업 경로 다변화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내 ‘역이민·교수·연구자 리턴 프로그램’ 강화다.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유학생·연구자·전문직 인력이 정치적·법적 불안정성 때문에 귀국을 선택할 경우, 이들이 한국 대학·연구기관·기업에 연착륙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넓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한국을 거점으로 동아시아·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한국 내 이민·난민 정책 고도화다. 미국과 유럽의 반이민 정서는 단기 정치 효과와 별개로, 결국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에서 장기적인 손실로 돌아온다는 평가가 국제기구와 경제 연구기관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은 이미 제조업·돌봄·농어촌·IT 일부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 없이는 시스템이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인권 기준을 준수하면서도 사회 통합과 치안·노동시장 안정을 동시에 도모하는 이민 거버넌스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한·미 정부 간 고위급 협의 채널 활용이다. 주한미국대사관·외교부·법무부·교육부를 축으로, 한·미가 △유학생 보호 △연구자 교류 유지 △기업 인력 비자 안정성 보장 등에 대한 협의 채널을 상시 가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한국이 ‘우려 국가’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동맹국으로서 합리적 우려와 요구를 분명히 전달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워싱턴 방위군 총격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트럼프 행정부의 ‘제3세계 이민 영구 중단’ 선언과 그린카드 전수조사는, 한 사건을 넘어 세계 이주 질서와 인권 규범, 글로벌 인재 경쟁 구도에 연쇄적인 충격파를 던지는 조치로 평가된다. 한국 역시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머물기보다, 변화하는 이민 지형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유학·이주 전략과 이민 거버넌스를 업그레이드할 현실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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