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는 오늘도 한 사람의 삶을 지켜낸 조용한 기적이 숨 쉬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 인근 작은 농촌마을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한 여성이, 전쟁의 포화를 피해 8,000km를 넘어 한국의 작은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출신 전쟁난민 안엘레나(46) 씨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날, 그녀의 고향은 가장 먼저 포탄이 떨어진 지역 중 하나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흙길은 순식간에 군용차량이 지나가는 피난 행렬이 되었고, 일상적인 풍경이던 집들은 하루아침에 잿빛 폐허로 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안엘레나' 씨/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청각장애를 가진 딸이 들을 수 없어서, 어디로 숨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부모님은 노약자라 빨리 걷기도 어려웠고요.”엘레나 씨는 그날의 공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후 그녀는 노부모와 장애를 가진 딸의 손을 붙잡고 눈물 어린 탈출을 시작했다. 몰도바 국경을 넘기까지 꼬박 사흘, 이어 난민센터가 있는 폴란드까지 다시 길고도 고단한 여정이 이어졌다. 그녀가 가진 전 재산은 낡은 두 개의 가방뿐이었다. 피난 여정 중 고려인 지원단체를 통해 광주 고려인마을의 항공권 지원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인연은 결국 그녀의 가족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데려오는 길이 되었다.

광주에 도착한 순간, 엘레나 씨는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곧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현실적 두려움이 밀려왔다. 노부모 병수발, 장애 자녀 치료, 생계 부담-모든 짐이 그녀 한 사람에게 쏠려 있던 상황이었다.

이 사정을 들은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깊은 고민 끝에 “그 가족을 우리가 지키자”고 결심했고, 마을 지도자들도 뜻을 모았다. 고려인마을은 그녀를 단순한 ‘지원 대상자’가 아닌,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려인마을이 운영하는 GBS 고려방송(FM 93.5MHz)은 그녀에게 새로운 역할을 제안했다. 하루 24시간 운영되는 방송의 약 70%가 러시아어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어, 러시아어에 능통한 안 씨의 역량이 필요했던 것이다. 현재 엘레나 씨는 방송 기자로 활동하며 출연진 섭외, 원고 정리, 뉴스 취재 등을 도맡고 있다.

그녀는 어느 날 원고를 정리하며 조용히 말했다. “전쟁은 우리 집도, 고향도, 삶도 빼앗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역할은 방송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조야 대표를 도와 마을 행사, 난민 지원 업무, 방송취재, 잡다한 허드렛일까지 맡으며 기꺼이 공동체의 손발이 되고 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자연스럽게 ‘우리 엘레나’라고 부른다.

엘레나 씨의 딸과 노부모는 광주에서 안정된 일상을 되찾았다. 마을 주민들은 노부모에게 따뜻한 빵을 나누고, 생활에 필요한 작은 것들을 챙겨주며 조용한 연대로 그 가족의 곁을 지켰다.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곁에 있어주는 일입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의 이 한마디는 광주 고려인마을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전쟁으로 삶이 무너진 한 가족이 다시 꿈을 꾸게 된 것은, 주변 이웃들이 건넨 따뜻한 손길 덕분이었다.

안엘레나 씨는 여전히 미콜라이우의 하늘을 떠올린다. 폭격으로 무너진 집과 불타버린 학교, 사라진 이웃들의 얼굴들…. 그러나 이제 그 기억은 절망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광주에 왔을 때 저는 잿더미 같은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제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광주는… 이제 제 두 번째 고향입니다.”

그녀는 오늘도 방송국 앞에 서서 담담히 말한다.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전쟁이 남긴 어둠 속에서도, 광주 고려인마을은 그녀와 가족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빛은 지금도 누군가의 삶을 다시 밝히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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