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 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한글문학 기획전을 개최하며 고려인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던 전동혁(1910~1985)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전동혁은 김두칠, 정추, 김세일, 최영근 등과 함께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 한글문학의 기틀을 세운 1세대 작가로 꼽힌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강제이주된 그는, 한글신문 『레닌기치』를 통해 시와 소설, 희곡을 발표하며 “한글은 곧 조국”이라는 신념으로 언어와 기억을 지켜냈다.

*고려인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전동혁(1910~1985)/사진=고려인마을 제공

그의 대표작 서사시 「박 영감」(1967)은 혁명과 강제이주 속에서 한 고려인 노동자의 삶을 통해 공동체의 존엄과 인간의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젊은 시절 러시아 내전의 볼로차예프카 전투에 참여하며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주인공 박 영감은 “붉은 깃발 펄럭이던 그날, / 우리는 새 세상을 믿었다.” 고 기록했다.

그러나 험악한 시대는 그를 낯선 땅으로 내몰았다. 1937년, 가족과 함께 강제이주 열차에 오른 전동혁은 카자흐스탄의 황량한 초원에서 집단농장 돌격대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언어를 잃지 않고, 한글로 노래하며 공동체의 희망을 일궈갔다. 그이 시 “하얀 눈 덮인 초원 위에도 / 나는 우리말로 부른다 / 고향은 멀어도 / 말은 내 곁에 있도다.” 는 디아스포라의 삶 속에서도 언어로 조국을 지킨 고려인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늙은 농부가 된 박 영감은 손자에게 쟁기를 쥐여 주며 “나는 이 초원에 뿌리를 내렸다. / 그러나 내 말, 내 혼은 조선의 산하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강제이주의 고통을 넘어, 언어와 기억으로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민족적 메시지가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전동혁은 기록과 기억으로 남은 작가이며, 그의 문학은 한글로 이어진 고려인 정신의 상징”이라며 “그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 세기 전 고려인들의 고통과 희망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광주 고려인문화관 2층 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전시는 망명지에서 피어난 한글문학의 숨결을 되살리며, 디아스포라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언어의 불꽃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동혁을 비롯해 김두칠, 정추, 최영근 등 고려인문학 거장들의 사진과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관람객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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